[문학예술]삼국통일 낳은 신라판 여인천하 '문명왕후 김문희'

  • 입력 2001년 11월 23일 18시 53분


“서형산 마루에 앉아 오줌을 누었는데, 오줌이 흘러 나라 안에 가득찼다.”

비단 치마를 주고 언니 보희의 꿈을 산 것이 그녀의 운명을 달리 만들었을까. 아니면 오빠 김유신과 절친했던 김춘추의 옷고름을 수선해준 것이 인생을 바꾸었을까. 김춘수와의 혼전 임신으로 오빠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사건이 그러했을까.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은 바로 신라 문명왕후(文明王后) 김문희다. 훗날 태종무열왕에 오른 김춘추의 아내이자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어머니. 그리고 신라를 태평성대로 이룬 신문왕의 어머니이자,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薛聰)의 외할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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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여류작가는 “언니의 꿈을 빼앗고 오빠 김유신의 책략으로 횡재해 왕후가 된 것”쯤으로 오도되어진 문명왕후를 새롭게 평가한다. 최고 권력자였던 오빠 덕에 남자를 잘만난 ‘동양의 신데렐라’가 아니라 ‘화려하면서 고통스럽고, 잔잔하면서도 열정적인 생애’를 살았던 인물로.

이 소설에서 문명왕후는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 않은 뜨거운 정열의 소유자였으며,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루고 통일신라의 평안을 이루게 만든 숨은 주역으로 그려진다. 이것이 그녀의 “운명이 아니라 의지였고, 얼굴이 아니라 머리에서 비롯된 것”이란 관점이 문명왕후를 “주체적 여성”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한다. 단편적인 사료와 아득한 설화의 빈곳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채운 것은 “풍요로운 여성성의 개화”(문학평론가 김미현)를 위함이다.

이같은 작의(作意)는 비단 문명왕후 개인에 그치지 않고 다른 여러 여성 등장인물에서도 드러난다. 수 많은 영웅과 호걸의 배후에는 이들을 강한 자식들로 키워낸 어머니만이 아니라 남성 권력자의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여러 여성들이 새롭게 부각된다.

신라 문명왕후가 조선 문정왕후에 겹쳐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이같은 여성 중심의 역사 서술이 이 소설을 신라판 ‘여인천하’ 마냥 흥미롭게 만든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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