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TTL, 임은경의 푸른 퍼포먼스

  • 입력 2001년 11월 16일 11시 22분


SK텔레콤의 TTL 광고는 얄밉다. 놀이로 가볍게 포장하고선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타이트하지 않고 적당하게 열려있되 여운을 남길 줄 안다.

바닥에 깔려있는 푸른빛의 천. 그 안에 불룩 솟아있는 무엇. 광고의 시작은 이게 전부다. 눈앞에 펼쳐진 환경은 지극히 절제되어 있지만 음악은 세게 밀고나간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라는 거친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푸른 천 안에까지 들릴 것처럼.

그래서일까. 푸른 천 안에 있는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살아움직인다. 그러다가 어라라, 갑자기 천을 찢고 불쑥 삐져나오는 가느다란 팔! 뒤이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한 임은경이 얼굴을 삐죽 내민다.

푸른천 밖으로 나온 임은경은 기뻐하는 표정.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을 휘감고 있는 거대한 푸른 천을 입으로 찌이익, 물어뜯는다. 몸에 돌돌 말아 기다란 꼬리처럼 만들기도 하고 천꾸러미를 어깨에 처억 얹어보기도 한다. 힘겹게 끌어보기도 한다.

요리조리 푸른 천과 실랑이를 벌이던 임은경. 급기야는 자신의 몸에 말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드레스처럼 만들어 뒤집어쓴다. 푸른 천 틈으로 당돌하게 내비치는 예의 그 흔들림 없는 눈길. 그녀는 잠시 우리에게 정면으로 시선을 던진다. 메이드인 트웬티, 티티엘.

TTL의 이번 광고는 한편의 퍼포먼스다. 순수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바에 집중한다. 자, 임은경에게 주어진 재료들은 딱 세가지. 커다란 푸른빛 천, 그리고 메탈그룹 크래쉬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라는 꺼칠꺼칠한 음악, 그리고 자신의 몸뚱아리. 이제 그녀가 할 일은 몸으로 덤비는 것 뿐.

이 세가지로 TTL은 세상과 스무 살을 행위예술하듯 몸짓과 율동으로 '보여준다'. 즉흥성을 가미한 원초적인 광고다. 그러므로 임은경이 푸른 천을 상대로 벌이는 몸짓은 그 의미가 딱 부러지지 않는다.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다. 느끼는 것은 각각의 스무살들의 몫이 아닐까.

단순하게 상징을 풀면 이렇다. 푸른 천은 쉽게 말해 세상이다.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생명체는 꿈틀대다가 스무살이 되자 밖으로 나온다. 마주 대한 세상=푸른천은 자신을 온통 휘감고 구속한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천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다. 그렇게 부딪히다가 푸른 천을 스무살의 감성대로 반죽한다. 전위적인 드레스처럼 만들어 자신이 입어버린다. 세상은 나의 것.

그리고 우리를 향해 눈길을 준다. 임은경의 눈빛은 당돌하다. 강하진 않지만 흡인력있는 순수함과 차가운 열정이 녹아있다. 세상은 내가 만들어, 알아? 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것처럼. 그 눈빛에 흔들리는 것은 오히려 시청자들이다. 난 언제 저런 눈빛을 했었던가 놀라면서.

TTL은 아무래도 임은경을 잊지 못하는 모양이다. 가끔씩 낯선 모델들을 영입하며 깜짝이벤트처럼 색다른 맛을 선사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임은경으로 회귀한다. 어쩔 수 없는 걸까. 임은경 자체가 TTL이 되어버렸고 온몸에 스무살 메시지가 풍겨버리니. 사실 이런 컨셉을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임은경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천을 몸에 감는 행위. 그것은 어린이들이 잘하는 유희이기도 하다. 단순한 설정이지만 몸으로 느끼는 촉감과 쾌감은 본능적인 즐거움을 준다. TTL, 원초적인 유희와 적절한 메시지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이 수법은 정말 얄미울 정도다.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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