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풍 증거조작 밝혀야

  • 입력 2001년 11월 11일 18시 33분


검찰이 9월 ‘북풍’ 사건 항소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한 문서들은 정치권에 폭풍을 몰고 올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내년 대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법원은 이러한 증거들에 대해 도저히 인정할 수 없거나 명백히 조작된 문서라는 판단을 내렸다.

법원이 형사재판에서 검찰측 또는 피고인측이 제출한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믿기 어렵다’는 등 완곡한 표현을 쓰는 것이 관행이다. 그런 관행을 깨고 ‘조작된 문서’라는 강한 표현을 쓴 이유는 재판을 정치 폭로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측이 제출한 문서 중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정재문(鄭在文) 의원에게 주었다는 위임장은 정 의원 관련 기사 복사본에 ‘위임함 이회창’이라고 쓴 것이다. 재판부는 김모씨가 제출한 이 위임장의 취득 경위, 문서의 형식이나 내용, 필적 등으로 볼 때 진실성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중요한 증거가 수사과정이나 1심 재판 때는 거론되지 않다가 느닷없이 2심 재판 과정에서 나타난 경위도 석연치 않다.

상식적으로도 97년 당시 여당의 대선 후보가 이런 치명적인 공작을 하면서 뚜렷한 문서증거를 남길 수 있겠느냐 하는 의심이 생긴다. 정 의원이 베이징(北京)의 한 호텔에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병수 부위원장과 작성했다는 합의서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가필한 흔적이 보이는 등 조작된 문서로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2심 판결에 대해 ‘객관성이 결여된 자의적 판단’이라고 반발하고 있고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야당 총재와 관련됐고 정치적인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문서라면 검찰은 재판부에 제출하기에 앞서 다소 재판이 지연되더라도 철저한 확인과 검증을 했어야 한다. 재판부에 모든 판단을 미루고 말 일이 아니었다.

재판부는 대선 기간에 북한 인사를 만난 한나라당 정 의원에 대해서는 1심 판결보다 가벼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대선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북풍을 요청했다는 증거가 없어 형량이 감경됐다는 것이다.

증거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검찰의 정도다. 재판부가 보기에도 ‘조작된 의혹’이 있을 정도의 문서를 새로운 증거로 제출한 검찰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검찰은 대법원 판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2심 재판부가 제기한 증거조작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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