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의료인 에이즈바이러스 노출사고 급증

  • 입력 2001년 11월 9일 18시 42분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들이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노출되는 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대해 다수의 의료인들은 ‘예견됐던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매년 국내의 에이즈 환자가 급증하고 있고 병원을 찾는 사례도 크게 늘어남에 따라 이들을 상대하는 의료인의 노출 위험도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료현장의 HIV 노출 실태〓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 A씨는 2년 전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하다. 병원을 찾은 한 에이즈 환자의 검사용 혈액을 채취하는데 사용한 주사바늘에 눈깜짝할 사이에 손가락이 찔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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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인 에이즈 바이러스 노출 급증

눈앞이 캄캄했지만 고민 끝에 병원에 사고 경위를 알리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치료제를 복용했다. A씨는 이후 6개월 동안 수차례의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아직도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또 다른 대형병원의 간호사 B씨(여)는 올해 초 HIV 노출 사고를 당했다. 에이즈 환자에게 주사를 놓다가 실수로 주사 바늘에 손을 찔린 것. 즉시 병원에 알린 뒤 치료제를 복용했다. 이후 몇 차례 검사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까, 나중에 혹시나 양성 판정을 받지 않을까 하는 고민으로 지금도 밤잠을 못 이룬다.

의료인의 직종별 HIV 노출 현황

직종의사간호사임상병리사기타합계
명(%)20(42)22(46)3(6)3(6)48(100)

연도별 의료인 HIV 노출 현황

연도92949597989920002001상반기미확인합계
2113231223148

국내 한 대학병원의 의사 김모씨(43)는 “실제로 환자에게 사용한 주사바늘 등에 찔려 B형 간염 등 각종 감염질환에 걸리는 사례가 많다”며 “비록 감염됐을 가능성이 낮더라도 의료인의 HIV 노출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때”라고 말했다.

▽HIV 노출 공포〓국내 대형 병원의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이 체감하는 에이즈 감염 공포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얼마 전 에이즈 환자를 수술했던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 C씨. C씨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가 몇 벌의 장갑을 끼는 것은 물론 바늘에 찔리지 않도록 극도의 주의를 기울였다. 또 환자의 혈액이 묻은 모든 수술 기구는 한 쪽에 밀봉 보관해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C씨는 “가끔 의사의 HIV 노출 사고를 접할 때마다 아찔하다”며 “요즘은 수술할 때마다 평소보다 몇 배의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동료가 에이즈 환자의 혈액을 채취하다가 주사바늘에 찔렸다는 소식을 접한 모 대학병원의 레지던트 D씨는 “요즘은 환자를 진료하다 바늘에 상처를 입을 땐 반드시 검사한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감염내과 강문원(姜文元) 교수의 조사에서도 각종 의료기구에 의해 HIV에 노출된 35건의 사례 중 29건이 주사바늘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나타났다.

▽사후 처치 실태〓강 교수의 조사 결과 노출 사고를 당한 의료인 39명 중 70% 이상인 28명이 노출 후 24시간 이내에 에이즈 치료제를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HIV에 노출됐을 경우 감염 예방을 위해 24∼72시간 이내에 치료제를 복용하기 시작해 최소 4주 동안 복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약물 부작용으로 일부가 중도에 치료제 복용을 포기한다는 것. 조사 결과 노출 사고를 당한 39명 가운데 복용 기간을 채운 사람은 24명(62%)이었고 12명은 심한 복통과 구토 증세로 중도에 복용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책〓일부에서는 에이즈 감염에 대한 지나친 공포심도 경계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에이즈 환자가 사용한 주사 바늘에 찔리더라도 에이즈에 걸릴 확률은 0.3% 안팎이며 치료제를 복용하면 예방 효과가 80% 이상 된다는 것.또 6개월 동안의 추적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오면 감염 위험이 5% 미만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의료인들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인 김모씨(45)는 “환자에 대한 에이즈 검사를 강화하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의료용구의 사용 권장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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