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필립 골럽/전쟁은 정답이 아니다

  • 입력 2001년 11월 8일 18시 24분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표현된 정치의 연장이다.”

19세기 프로이센의 전쟁 이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정치적 의지의 가장 극단적 표현이라는 뜻이다. 전쟁의 정치적 목적은 한 쪽의 의지를 다른 쪽에 강요하며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는 것이다.

▼美공격 아랍 불만만 불러▼

9월11일에 시작된 전쟁의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새로운 질서는 전쟁의 성과와 전후 수습, 장기적 안정으로 이끄는 평화정착 과정 등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세 가지 질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의 전쟁 목적은 무엇인가. 둘째, 미국의 군사 전술은 전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셋째, 이슬람 세계의 장기적 안정과 평화 정착 조건은 어떤 것인가.

▽전쟁 목적〓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목적은 분명하다.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고 알 카에다 조직을 와해시키며 아프가니스탄에 친 서방 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미 국방부의 폴 울포위츠 부장관이나 리처드 펄 안보기획국장 같은 고위 관계자들은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다른 아랍 국가들을 겨냥한 2단계, 3단계의 공격 가능성까지 공언하고 있다. 미국의 확전 여부는 워싱턴의 정치 역학구도와 전쟁의 향방이 결정할 것이지만 확전은 미국을 향한 아랍세계의 뿌리깊은 불만을 증폭시키고 불안정을 키울 뿐이다.

대 테러 전쟁 지도부는 전쟁을 얼마나 끌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이 싸움은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정치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의미없는 얘기다. 어떤 뛰어난 전략가도 50년 후까지 내다보고 전략을 짤 수는 없다.

▽군사 전술〓부시 행정부는 국내의 정치적 압력에 밀려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서둘렀다. 당초 아프가니스탄 공습의 목적은 아프간 상공의 제공권을 장악하고 탈레반의 방공망과 병참기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당초 목적과는 달리 최전선의 탈레반군과 알 카에다의 산악 동굴망에 폭탄을 쏟아 붓고 있다.

무엇보다 공습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이 91년과 98년에 공격했던 이라크나 세르비아와는 달리 군사 기반시설이 거의 없는 세계 최빈국의 하나다. 20년 간의 전쟁으로 성한 게 없는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탈레반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

영국의 군사 역사가 마이클 하워드는 “테러를 뿌리뽑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하는 것은 암세포를 뿌리뽑는다고 환부를 불로 지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그는 폭격이 테러리스트들을 격리시키기는커녕 이슬람권에서의 발언권을 강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윈-윈 전략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하워드는 공습이 길어질수록 결과는 나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지역 안정〓설사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적 성공을 거둔다 해도 장기적으로 지역 불안정이라는 문제가 남는다. 중동과 걸프지역, 중앙·남아시아는 수십년 동안 전쟁과 위기, 불안정으로 점철돼왔다.

냉전 시대의 국지적 위기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에 의해 통제됐다. 이 때문에 국지전이 세계전으로 번지는 일은 없었다. 냉전이 끝나면서 그런 제어 기능은 사라졌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이 방치된 결과 오늘날의 재앙으로 이어졌고, 중동에서는 몇 년간 계속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정착과정이 완전히 붕괴됐다.

▼이-팔 갈등해소가 첫 과제▼

결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푸는 것만이 아랍권이 느끼는 역사적 굴욕과 좌절감을 치유하고 테러리즘의 이념적 정당성을 제거하는 길이다. 아랍과 이스라엘의 갈등은 지난 15년 간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된 폐쇄 이슬람 사회의 불안을 키우는 자양분이 돼왔다. 급진 이슬람의 성장은 민주화와 현대화, 경제성장의 결핍과 직접 연결돼 있다.

요컨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행동은 뿌리깊은 갈등의 결과에만 영향을 미칠 뿐 원인에는 접근할 수 없다. 따라서 문제의 깊은 뿌리에서 연유한 테러리즘을 제거할 수도 없다. 이 지역에서 질서와 평화를 이루는 것은 경제성장 및 자원의 공평한 분배, 정치적 현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전쟁은 문제 해결의 정답이 아니다.

필립 골럽(프랑스 파리 제8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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