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전쟁과 TV

  • 입력 2001년 11월 5일 18시 35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달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공격에는 TV로 볼 수 있는 드라마틱한 타격이 포함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발언 뒤 미국이 이라크까지 공격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었다.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를 당해 무너지는 장면을 TV로 지켜본 미국인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보복 또한 ‘TV 시청용’이 되어야 하는데 아프가니스탄에는 그럴듯한 타격목표가 없기 때문에 부시의 발언은 이라크가 공격목표임을 암시한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이 무렵 서울에 주재하는 한 유럽국가 정보요원은 “이라크 공격이 임박했다”는 정보를 흘리고 다니기도 했다.

▷TV가 전쟁을 본격적으로 ‘중계’하기 시작한 것은 91년 걸프전 때부터다. 밤하늘을 수놓으며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과 폭탄은 종군기자들이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다”고 전할 정도로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미군 폭격기들이 폭탄을 투하하며 찍은 폭격 전과 후의 사진도 TV의 인기 출연자가 됐다. 이번에도 화려한 전쟁중계를 기대했으나 아프간 공습 한달이 다 되도록 ‘불꽃놀이’ 수준의 장면이 나오지 않자 눈치 빠른 기자들은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며 ‘안개전쟁’이라는 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대신 이번에는 TV가 선전전에 이용되고 있다. 20세기 전쟁인 걸프전과 21세기 첫 전쟁인 ‘테러와의 전쟁’의 차이라고나 할까. 특히 오사마 빈 라덴은 TV를 자신의 주장을 전파하는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는 두 차례 아랍 위성방송 알 자지라에 등장, 미국과 유엔을 규탄하고 아랍권의 단결을 호소했다. 정보에 굶주리던 미국 TV들은 빈 라덴의 첫 방송은 여과 없이 방영했으나 두 번째 방송은 간략하게 다루었다. 선전전의 효과를 깨달은 것이다.

▷TV가 발전을 거듭해 이처럼 전쟁에서도 한몫을 하게 됐으나 여전히 보여주어야 할 것과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의 도구임에는 변함이 없다. 쇳덩어리에 불과한 미사일이나 폭탄이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과 죄 없이 죽어가는 아프간 민간인들의 가슴 속에서 커지는 분노 가운데 어떤 것을 보아야 할까. TV는 모르지만 우리는 안다.

<방형남논설위원>hnb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