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전쟁을 본격적으로 ‘중계’하기 시작한 것은 91년 걸프전 때부터다. 밤하늘을 수놓으며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과 폭탄은 종군기자들이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다”고 전할 정도로 대단한 구경거리였다. 미군 폭격기들이 폭탄을 투하하며 찍은 폭격 전과 후의 사진도 TV의 인기 출연자가 됐다. 이번에도 화려한 전쟁중계를 기대했으나 아프간 공습 한달이 다 되도록 ‘불꽃놀이’ 수준의 장면이 나오지 않자 눈치 빠른 기자들은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며 ‘안개전쟁’이라는 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대신 이번에는 TV가 선전전에 이용되고 있다. 20세기 전쟁인 걸프전과 21세기 첫 전쟁인 ‘테러와의 전쟁’의 차이라고나 할까. 특히 오사마 빈 라덴은 TV를 자신의 주장을 전파하는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는 두 차례 아랍 위성방송 알 자지라에 등장, 미국과 유엔을 규탄하고 아랍권의 단결을 호소했다. 정보에 굶주리던 미국 TV들은 빈 라덴의 첫 방송은 여과 없이 방영했으나 두 번째 방송은 간략하게 다루었다. 선전전의 효과를 깨달은 것이다.
▷TV가 발전을 거듭해 이처럼 전쟁에서도 한몫을 하게 됐으나 여전히 보여주어야 할 것과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의 도구임에는 변함이 없다. 쇳덩어리에 불과한 미사일이나 폭탄이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과 죄 없이 죽어가는 아프간 민간인들의 가슴 속에서 커지는 분노 가운데 어떤 것을 보아야 할까. TV는 모르지만 우리는 안다.
<방형남논설위원>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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