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비빔밥

  • 입력 2001년 11월 1일 18시 39분


우리에겐 예로부터 섣달 그믐날 비빔밥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집 안팎을 깨끗이 치워 새해 맞을 준비를 마친 뒤 그동안 남겨두었던 반찬을 저녁상에 모두 올려 밥에 비벼 먹던 풍습이다. 요즘 비빔밥 하면 나물 위에 다진 고기를 고명으로 얹고 달걀부침까지 더하지만 고기와 생선이 귀하던 시절 남은 반찬이라야 푸성귀가 고작이었을 게다. 이처럼 그 해 마지막 날 묵은 음식을 모두 없애는 데에는 고달팠던 한 해를 잊고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비빔밥의 유래로는 여러 가지가 들린다. 전란으로 나라님이 몽진길을 떠났는데 경황 중이라 수라상에 올릴 게 변변치 않아 맨밥에 나물 몇 가지를 얹은 게 처음이라는 설이 하나다. 그런가 하면 일손이 바쁜 농사철, 밥과 반찬을 일일이 그릇에 담아내기가 번거로워 양푼에 한꺼번에 쏟아 비벼 먹은 데서 나왔다고도 한다. 아무튼 전주비빔밥이 평양냉면 개성탕반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음식으로 꼽혔다고 하니 비빔밥의 역사가 오래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비빔밥은 우리만의 먹을거리가 아니다. 세계가 알아주는 ‘글로벌 푸드(global food)’다. 3년 전 국제기내식협회 총회에서 대한항공의 비빔밥이 최우수상을 탔다. 세계적 팝 가수 마이클 잭슨도 재작년 한국공연을 왔을 때 비빔밥만 시켜 먹었다지 않은가. 요즘에는 음식점에서 고추장을 듬뿍 넣어 벌건 비빔밥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외국인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가 그저께 재미있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 장수노인들은 잡곡밥보다는 쌀밥을, 생야채보다는 살짝 데친 나물을 즐겨 먹고 된장 고추장을 매일 섭취한다는 것이다. 데치면 채소 속의 농약 성분이 빠지는 데다 생야채보다 많이 먹어 섬유소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기에 좋다. 장을 담그는 콩에 항암 노화방지 성분이 풍부하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번 조사 책임자인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가 ‘비빔밥이야말로 가장 권장할 만한 장수식품 가운데 하나’라고 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맛은 물론 건강에도 나무랄 데 없는 먹을거리임이 증명된 셈이다. 선조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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