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수/간통죄 전면폐지 안된다

  • 입력 2001년 11월 1일 18시 34분


최근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간통죄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위헌규정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사건에서 재판관 8 대 1의 압도적 다수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가정-혼인제 지키는 보루▼

재판부는 간통죄 폐지가 세계적인 추세이고 성의식 변화에 따라 규범력이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우리 사회 고유의 정절관념, 도덕기준에 비춰볼 때 아직도 국민의 법의식은 간통죄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판단했다. 이 점에 기초할 때 간통죄 규율은 선량한 성도덕과 일부일처제 유지, 부부간 성적 성실의무 수호, 간통으로 야기되는 가족문제 등 사회적 해악의 예방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통죄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한 혼인과 가족생활보장에 부합하는 법률이며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일 뿐이라고 밝혔다. 다만 간통죄 폐지의 세계적 추세와 사생활에 대한 법개입 논란, 간통죄 악용사례, 국가형벌로서의 기능약화 등을 고려할 때 입법부는 간통죄 폐지 여부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결정으로 인해 간통죄 존폐문제가 다시금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일찍부터 많은 형사법률가들은 간통죄 폐지 쪽으로 기울고 있다. 개인의 애정생활은 법이 간섭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부부간의 성윤리가 간통죄 처벌로 유지될 것도 아니라는 시각에서이다. 최근 진보적인 페미니스트 진영에서도 간통죄가 오히려 여성의 평등과 독립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간통죄 폐지 쪽으로 기울었다. 간통죄의 폐지가 곧 성생활의 문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책임 있는 혼인관, 윤리관을 확립시키는 계몽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선량한 성풍속이나 부부애가 형벌만으로 유지될 수 없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러나 형법이 평화로운 공동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면 죄와 벌의 존폐 및 당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지배적인 국민 감정이나 사회 일반인의 윤리의식에 합치되도록 해야 한다. 법률의 개폐에서 약간의 모험과 진취성은 부득이하지만 다수의 지배적인 법의식을 요동시키는 실험은 현명한 처사일 수 없다.

간통죄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가정과 혼인제도를 보호하기 위한 형법의 구체화 규범이다. 이 제도적 가치를 침해하는 간통행위의 구체적 피해자는 상간자들의 배우자나 가족만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다. 따라서 간통죄를 단지 사생활영역이나 개인의 애정문제 또는 성적 자기결정권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가정과 혼인 및 건전한 성풍속을 포괄하는 간통죄의 사회질서로서의 의미를 제대로 짚지 못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나라 형사실무에서 간통죄 규율은 비교적 엄격하게 적용돼 온 게 사실이다. 때로는 간통죄가 지명도 높은 인권변호사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데 오용된 적도 있었다. 간통죄 규율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려면 반윤리적 성격의 간통행위와 반사회적 성격의 간통행위를 구분하고, 반사회적 간통행위에 대해서만 형사제재를 과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간통행위가 반사회성을 띠는 경우란 피해자인 배우자나 가족들의 중지 요구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간통을 지속함으로써 가정과 혼인의 가치를 현저히 욕보인 경우일 것이다. 그밖에 현행 간통죄의 중벌규정을 완화하여 벌금형의 선택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도도 모색해 봄직하다.

▼처벌완화는 고려할 만▼

이처럼 간통죄의 처벌 완화는 가능하나 전면폐지는 결코 고려할 때가 아니다. 성풍속과 애정관의 변화를 형법이 수용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변질과 왜곡에 부화뇌동해서는 안 된다. 성풍속의 자연스러운 변화와 가정, 그리고 결혼제도의 부자연스러운 변질을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통계적으로 1995년 이후 지난해까지 간통죄 발생건수는 점차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은 친고죄인 간통죄의 성격상 부정한 배우자를 돌이켜 가정을 지켜보려는 상대방 배우자의 인내의 폭이 좁아졌고 막바로 이혼으로 치달은 결과로 보인다. 이혼으로 깨어진 가정은 또 다른 사회문제로 비화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점에서도 간통죄규율은 가정과 혼인제도의 최후 보루인 셈이다.

김일수(고려대 교수·법학

본보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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