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주선/경쟁력 발목잡는 ‘대기업 규제’

  • 입력 2001년 10월 21일 18시 48분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경제력집중억제 규제개혁 논의가 재벌과 그 대변자인 전경련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기되고 있고, 경제력 집중이 여전히 독과점 심화와 소유 지배의 괴리 등 심각한 폐해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재벌과 소수 대주주의 전횡은 경제민주주의 실현을 어렵게 하고, 재벌의 동반부실 위험과 구조조정 지연은 국민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지우므로 이 규제의 폐지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경제력집중억제 규제는 규제가 아니라 시장경쟁 촉진을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허점이 너무 많다. 우선 경제력 집중이 정말 문제라면 유효한 정책수단을 선택해 확고하게 집행해야 한다. 현행 경제력집중억제 규제는 1986년에 도입된 뒤 14년 동안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강력하게 집행되어 왔으나 재벌로의 집중을 막지 못했다. 정책수단으로서 이 규제가 유효성이 없음을 입증하는 이보다 더 명백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는가.

더구나 이 규제는 글로벌리제이션과 IT혁명으로 인한 세계시장의 통합으로 이제는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구조조정에 애로가 되고 있다.

따라서 공정거래위는 전향적으로 이를 폐기하고 유효한 정책수단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이미 도입된 지배구조의 확실한 정착, 적극적인 경제규제 개혁의 추진, 담합과 반경쟁적 M&A의 강력한 제재 등은 합리적 정책대안이 될 수 있다.

둘째, 경제적 자원의 소수집중과 소수가 전권을 행사하는 문제는 공정거래법이 아니라 오히려 조세나 사회복지 등 다른 정책수단으로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모든 경제문제를 공정거래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적절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공정거래정책은 시장경쟁의 원활화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셋째, 경제력집중억제 규제는 경쟁을 억제하고 인센티브 구조도 왜곡한다. 예컨대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제도는 34배가 넘게 차이가 나는 최상위 기업과 30위 기업을 같은 규제로 제약하고 있다. 이는 어른과 아이를 같이 취급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폐지하든지 대상을 4대 재벌로 축소하라는 것은 합리적인 주장이다.

넷째, 경제력집중억제 규제 개혁은 재계의 이익을 위해서만 주장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학계나 언론의 공정거래나 기업정책 논의는 기업 경쟁력을 높여 경제적으로 재도약하려면 경제력집중억제 규제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집중되고 있다. 또한 공정거래위를 제외한 타 경제부처들도 이 규제의 전향적인 개혁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며, 야당은 물론 여당의 고위 당직자까지도 이 규제의 재고를 거론했다는 보도가 있다. 그러므로 공정거래위가 경제력집중억제 규제 개혁 주장을 재계의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것은 생산적 논의의 출발점이 아니다. 그러한 매도는 오히려 공정거래위가 ‘밥그릇 지키기’에 몰두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이주선(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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