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수임료 탈세… ‘前官’-정치인이 단골

  • 입력 2001년 10월 21일 18시 29분


벤처기업 C사의 주식분쟁 사건과 지앤지(G&G) 회장 이용호(李容湖)씨 비리 비호의혹 사건(이용호 게이트) 등에서 변호사들이 사건을 수임하면서 선임계를 내지 않은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선임계를 내지 않을 경우 수임료 소득에 대한 탈세가 가능해 조세정의 차원에서도 이 같은 편법변론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조인이 많다.

▽편법변론 사례들〓벤처기업 C사의 주식분쟁 사건과 관련,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원내총무는 2월 피진정인인 C사 대표 서모씨의 변호인으로 선임됐다.

이 총무는 당시 선임계를 내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지검 동부지청에 몇 차례 전화를 걸어 “서씨가 억울해 하는데 언제쯤 서씨를 풀어줄 것이냐”는 등의 변론을 했다.

김태정(金泰政) 전 법무장관은 지난해 5월 이용호씨의 변호인으로 선임됐으나 역시 선임계를 내지 않고 임휘윤(任彙潤) 당시 서울지검장에게 전화로 ‘변론’을 하고 그 대가로 1억원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이씨 사건의 수사검사와 대학동창인 검사 출신 이모 변호사도 이씨측에서 1억원을 받고 변호인으로 선임됐지만 역시 선임계를 내지 않았다.

지난해 MCI코리아 대표 진승현(陳承鉉)씨 금융비리사건을 맡았던 검찰총장 출신 J변호사는 선임계를 내지 않은 상태에서 전화변론을 한 사실이 문제가 되자 수임료를 반환하고 사임하기도 했다.

벤처기업 C사의 주식분쟁 사건에서는 민주당 지구당 위원장인 노모 변호사가 진정인의 변호인으로 선임돼 2000만원을 받고 법률상담을 했으나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 변호사는 “법률상담 외에는 검찰과 법원을 상대로 어떤 변론 활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임계를 낼 필요가 없었고 선임료도 나중에 모두 돌려줬다”고 말했다.

▽문제점〓편법변론은 대부분 검찰수사 단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법원에서는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간단한 서류 제출 등의 변론 활동은 물론 변호인이 법정에 설 수 없는 원천적인 제약을 받지만 검찰수사 단계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한 변호사는 “판사들은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사건과 관련해 변호인을 접촉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검찰은 선임계 제출 여부 등을 확인하지 않고 전화변론 등에 응하는 경향이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관행의 문제는 우선 대한변호사협회가 제정한 윤리규칙에 위배된다는 점이다.

윤리규칙은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했을 때 선임계를 검찰과 법원 등 해당 기관에 제출해야 하고 제출하지 않으면 어떤 변론도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또 선임계를 소속 지방변호사회에서 확인받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칙을 위반하더라도 대한변협은 과태료와 견책 처분 등 가벼운 징계밖에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제재 효과는 크지 않다고 법조인들이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지방변호사회를 경유하는 선임계는 세무당국의 과세 근거가 되기 때문에 선임계를 내지 않을 경우 탈세가 가능해진다.

H변호사는 “소득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변호사가 1억원의 수임료를 받으면 보통 부가세 10%와 함께 2000만∼3000만원의 소득세가 과세돼 결국 3000만∼4000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고 변호사들의 선임계 기피 이유를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대책〓변호사법을 개정해 선임계 제출을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법조인들은 입을 모은다.

대한변협의 한 상임이사는 “변협 윤리규칙으로는 특히 정치인이나 판사나 검사직에서 떠난 지 얼마 안 된 이른바 ‘전관 출신’ 변호사들의 편법변론을 방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시급하게 관련법이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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