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범죄소설은 자본주의의 거울 '즐거운 살인'

  • 입력 2001년 10월 19일 19시 24분


▼'즐거운 살인' 에르네스트 만델 지음 이동연 옮김/296쪽 1만3000원/이후▼

‘범죄소설의 사회사’란 부제를 단 이 책은 범죄소설과 부르주아 사회 간의 관계를 ‘반영론’의 관점에서 접근한 문학사회학적 저작이다. 트로츠키-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진 저자는 이 책에서 부르주아 사회와 범죄의 필연적 연관성이 ‘범죄 소설’의 변천 과정을 통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현대의 추리소설은 ‘선한 악당’에 관한 대중 문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초반에 발발한 반(反)자본주의적 흐름 속에서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악당’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초기의 범죄 소설들이 보여주는 악에 대한 선의 종국적 승리는 바로 노동자들에 대한 부르주아의 승리를 의미하며, 동시에 부르주아 체제의 영속성을 확인시켜주는 장치였다. 초기 범죄 소설들에 등장하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인 탐정, 그가 바로 부르주아적 합리성과 이성의 대변자다.

저자는 초기 추리소설들이 지녔던 통상적인 이데올로기, 즉 물신화된 죽음과 제한된 법칙에 따른 재판, 증거와 그것의 분석만으로 진행되는 형식화된 범죄수사에서 부르주아 사회에 만연한 소외와 물신화 현상의 징후를 발견한다. 자본주의의 성장과 더불어 진행된 범죄 집단의 확대재생산은 마침내 범죄소설에 경찰을 등장시켰다. 초기 부르주아 사회와는 달리 이제 경찰은 가장 숭고한 질서, 즉 사유 재산을 지켜주는 수호자로 나타났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과 냉전 체제는 경찰 대신 스파이를 등장시켰는데, 이때부터 범죄와 정치는 경계선이 불분명해진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대목은 범죄 집단의 카르텔화 현상에 대한 분석이다. 마피아와 같은 대규모 범죄 집단은 후기 자본주의적 기업 구조와 동일한 방식으로 형성됐다. 그들은 마약 밀매 등을 통해 대규모의 이윤을 획득했으며, 자신들의 잉여 자금을 합법적 사업으로 전환함으로써 범죄와 신디케이트, 법률 전문가 사이의 연계고리를 만들었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범죄는 더 이상 악당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범죄와 법률의 공생, 도덕상의 타락과 물질적 부패 현상은 전통적인 선과 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현대의 범죄소설은 이런 타락상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반영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더 이상 부르주아 사회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신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만델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추악한 이면을 반영하는 오늘날의 범죄소설들은 독자들에게 부르주아 사회의 문제점들을 잘 파헤쳐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런 평가가 곧 범죄소설에 대한 긍정성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는 자본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에 기반한 대립 관계의 설정이란 개별 상품 소유자간의 경쟁을 극도로 합리화한 부르주아적 질서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바로 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대안’의 문제이다. 그러나 만델의 도덕적 목소리 역시 해방의 전망을 담아내기에는 여전히 거친 듯하다.

고봉준(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연구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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