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명작에서 이런 논란은 적지 않게 벌어진다. 작품의 주제가 무엇이냐를 놓고 다른 해석을 가한다. 항일 시인 윤동주의 ‘별 헤는 밤’도 그런 작품이다.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서정을 노래한 시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조국 광복을 위해 싸우다 죽겠다는 현실 참여의 다짐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가 빛나는 서정시인이요, 또 일제 감옥에서 옥사한 열사이기에 두 갈래 해석이 다 가능하다. 아니면 두 가지가 어우러진 것으로.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서울 독립공원 역사관을 둘러보고 방명록에 사무사(思無邪)라고 적었다. 논어의 “시경 300편을 한마디로 하면 ‘사무사’이다”라는 데서 옮긴 것이다. 마음에 사악함이 없다는 표현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한국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해 일본 보수층 유권자들의 박수를 받은 그가 적은 화두이기에 해석이 분분하다.
▷참혹하고 처절한 항일투사들의 행적을 접하고 경건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한일관계를 생각해 보았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야스쿠니 신사에 간 것도 사무사의 행위요, 그러니 정당화할 수 있다는 뜻일까. 문학에서는 이런 양면적 해석을 유도하는 기법을 애매모호성(앰비규어티)이라고 한다. 어느 쪽으로도 해석을 가능케 하는 작법이라는 것이다. 태평양전쟁을 비롯한 현대사 인식에서 ‘애매한 일본인’을 질타한 이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다. 애매한 방명록의 석 자가 오늘날 한일관계의 불투명성을 상징하는 것인가.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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