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수사만 의뢰하면 끝인가

  • 입력 2001년 10월 12일 18시 54분


1990년대 중반 기자가 대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1차 쪽지시험을 치르고 며칠이 지난 뒤 교수님으로부터 “왜 채점 결과에 대해 문의하러 오지 않느냐”는 말씀을 들었다. 학생이 제출한 답안에서 교수가 어떤 대목을 좋게 평가했고, 어떤 논리적 허점을 지적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교수님의 시각에서 보면 금융감독원의 주가조작 조사 사후관리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금감원은 매년 수십명의 주가조작 혐의자를 서울지검에 고발하고, 수사 의뢰한다. 그러나 검찰이 주가조작 연루자를 구속하는지,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지, 또 법원이 중형을 선고하는지 무죄 석방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지난 1년간 금감원에서 만난 주가조작 조사담당자들은 “우리는 모른다. 묻지 말아 달라”는 믿기 어려운 말만 되풀이했다. “검찰에 넘기고나면 후속 상황을 검찰에 물을 수도 없고, 묻더라도 서류 1장 정도만 보내줄 뿐 구체적인 정보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금감원의 이같은 태도는 검찰에 대한 ‘지나친 저자세’이거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금감원은 수사 과정이나 판결 결과에 관심을 보여야 마땅하다. 금감원에서 문제삼았던 대목이 법률적으로는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다.

또 금감원의 눈이 살아 있어야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법조 주변 ‘전화 변론’의 효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번 이용호씨 사건의 경우가 좋은 예다.

내년부터 금감원에 국세청 수준의 준사법권이 주어진다. 그동안 혐의자 소환조차 마음대로 못하면서 주가조작을 찾아내던 조사담당자들은 일 처리가 쉬워질 것이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금감원이 지금처럼 사후관리에 무관심하다면 준사법권을 가진들 제대로 조사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준사법권을 요구하기에 앞서 이미 주어진 권한을 충분히 활용하고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아쉽다.

김승련<금융부>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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