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이슬람 폭력'미국이 키웠다 '추악한 전쟁'

  • 입력 2001년 10월 12일 18시 24분


◇ 추악한 전쟁-아프가니스탄, 미국 그리고 국제 테러리즘/ 존 K. 쿨리 지음/412쪽 1만5000원 이룸

러시아의 장군 클라우제비츠(1780∼1831)는 “전쟁은 수단을 달리해 계속되는 정치일 뿐이다”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전쟁은 우리들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강제하기 위하여 의도된 폭력행위”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미국이 이번 전쟁으로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인 탈레반에 강제하려는 ‘의지’는 무엇인가? 인류의 ‘자유 수호’(미국 공습 작전명)를 위해 ‘테러’라는 악(惡)을 박멸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악은 도대체 어디에서 발원한 것인가.

연일 계속되는 공습 중계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이 책은 저널리즘의 시각에서 냉정하게 ‘테러와 전쟁’ 사태의 원인을 규명한다. 근자에 보도를 통해 단편적으로 알려진 내용들이 두름 엮이듯 꿰어지면서 사태의 본질을 간파하는 눈을 달아준다.

미국 ABC 뉴스 특파원으로 중동분쟁 전문가인 저자가 심층 취재로 얻은 결론은 간단한다. 테러의 최대 피해자인 미국이 실제로는 이슬람 테러범의 발호를 조장했으며, 이제 그 ‘추악한 전쟁’의 댓가를 치루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1970년대부터 포연이 걷힌 적이 없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중동 유전지역에 접한 요충지인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친(親)소련 노선으로 기울어지자 불안해진 미국은 반정부 세력의 뒤를 몰래 봐줬다. 이에 자극받은 소련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장구한 불행이 시작됐다.

중동에서의 헤게모니가 위협받을 것을 염려한 카터 행정부는 급기야 남아메리카에서 재미를 봤던 ‘대리전’에 돌입한다. 베트남전에서 쓴맛을 본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손에 피를 묻힐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에 반공주의자인 이슬람 과격분자(수니파)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대(對) 소련 ‘지하드’(聖戰)를 후원하는 길을 택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에겐 ‘성전’이었으나 미국으로서는 이슬람 용병을 내세운 ‘추악한 전쟁’일 뿐이었다. 그 사령탑인 미국 CIA가 5만여명의 이슬람 전사들을 육성했고, 미 육군부대나 네이비실 같은 특수부대가 극비리에 이들을 훈련시켰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198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패퇴하자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는 남몰래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린 뒤 발을 뺐다. 그때만해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손자(孫子)의 병법은 만고의 진리같아 보였다. 하지만 남의 손을 빌어 싸우는 것이 최악의 사태를 낳았다.

미국에게 훈련받은 베테랑 전사들이 1990년대들어 수단 이집트 알제리 같은 북아프리카로 펴져나가 각종 이슬람 폭력투쟁의 핵심 세력이 됐다. ‘이슬람 과격파와의 계약결혼’이 낳은 사생아 ‘탈레반’도 CIA가 ‘대 소련 지하드’ 자금줄로 키워온 마약 생산권을 수중에 넣고 총구를 미국에 겨눴다.

이들 무장단체는 ‘이슬람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서 미국을 정조준했다.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는 빙산의 일각이었을 따름이며, 그외에도 얼마나 다양한 테러 기도가 있었는가가 책에 상세히 열거되어 있다. 미국이 벌인 ‘더러운 전쟁’은 결국 부메랑이되어 뉴욕의 심장부에 꽂힌 셈이다.

최근 미국의 대대적 공습으로 사태는 이미 ‘귀환불능점(point of no return)’을 지나쳐 버렸다. 이번에는 아프가니스탄내 ‘북부동맹’을 통해 또다른 대리전을 펼치려는 듯하다. 저자는 지난해 이런 사태를 예견했는지 이렇게 당부한다.

“이슬람 신앙을 서방이 물리쳐야할 악의 화신으로 간주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원제 ‘Unholy Wars’(2000).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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