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슬그머니 구속하면 끝인가

  • 입력 2001년 10월 7일 19시 16분


국가정보원 전 경제단장 김형윤씨 사건은 의혹 속에 중단됐다가 10개월 만에 재개된 수사에서 김씨를 구속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김형윤씨는 정현준 게이트에 관련된 동방금고 측으로부터 55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는데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사가 미뤄졌다. 검찰은 참고인들의 소재 파악이 안 돼 수사가 늦어졌다고 해명했으나 수사 관행에 비추어 논리가 군색하다. 본도 보도가 나간 지 20일, 김 전 단장을 소환한 지 단 하루 만에 구속한 것을 보더라도 보도가 아니었더라면 묻혀버렸을 가능성이 농후한 사건이었다.

검찰의 특별수사는 지위의 고하를 가리지 않는 엄정성과 공정성이 생명이다. 그러나 힘있는 기관의 간부가 거액의 뇌물을 받은 증거가 나왔는데도 구속을 피해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으니 검찰이 ‘사정의 중추기관’이라는 말을 쓰기에 부끄럽게 됐다.

담당 검사가 정현준 게이트 사건으로 구속된 이경자 동방금고 회장으로부터 김씨에게 직접 뇌물을 주었다는 결정적인 진술을 확보하고서도 수사를 중단한 경위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내부와 외부의 연결구조에 대한 조사가 핵심이다.

이용호 게이트나 김형윤씨 사건 처리과정을 들여다보면 검찰이 근래 ‘정치 검찰’이라느니 ‘썩은 검찰’이라느니 하는 비난을 듣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김형윤씨도 국정원이 구명(救命) 로비를 펼쳐 수사 진전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권력기관의 로비를 받고 봐줬다가 언론에 보도되니까 슬그머니 구속하고 종결해 버린다면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이것은 단순한 뇌물 사건이 아니다. 검찰 수사가 외부 로비 또는 압력에 의해 중단된 구조를 파헤쳐야만 동일한 사건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이용호 게이트나 김형윤씨 사건은 혐의가 유력한 내사 사건의 돌연한 중단이라는 형식과 성격이 비슷하고 모두 검찰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땅에 떨어뜨린 대표적인 의혹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철저한 내부 감찰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검찰이 자체 감찰수사로 밝힐 수 없다면 이용호 게이트와 함께 특별검사의 수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김 전 단장은 동방금고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를 무마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정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듭나겠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과거 정보부나 안기부 스타일의 비리 의혹이 그치지 않는 데 대한 자성과 함께 감찰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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