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준영처장의 사실왜곡

  • 입력 2001년 9월 28일 18시 57분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박준영(朴晙瑩) 국정홍보처장이 그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 중 일부는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박 처장은 문화관광위원회의 국정홍보처 국감 답변을 통해 세무조사 과정에서 마치 동아일보사가 정부에 타협을 제의한 듯한 인상을 주는 발언을 했다. 실로 어이없는 일이다. 없는 사실까지 있었던 것처럼 왜곡하는 것이 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언론개혁인지 묻고 싶다.

박 처장이 타협 제시의 한 사례로 든 6월9일 김병관(金炳琯) 당시 동아일보 명예회장과 안정남(安正男) 당시 국세청장의 면담에서 세무조사와 관련한 얘기는 오가지도 않았다. 김 전 명예회장은 오히려 ‘세무조사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없고, 그 문제는 그 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거나, 대통령의 국정쇄신책 발표 약속을 준수해 달라는 등의 얘기를 했다. 어떤 타협이나 협조도 요청한 사실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오간 대화 내용은 그 후 김 전 명예회장이 밝힌 바 있고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사실이 그런데도 이를 타협 제시로 몰아간 것은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계속되고 있는 특정신문에 대한 흠집내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는 언론이 겉으로는 정권을 비판하면서 뒤로는 거래를 시도하는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동아일보도 명예에 큰 손상을 입었다. 정권의 의도가 참으로 불순하다. 이 같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어디 있는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정부여당의 일부 인사들은 언론사태의 와중에서 끊임없이 특정언론을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이면서 매도 비방하고 있다. 그것도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들이 상당수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언론사에 대해 어떤 압박이나 탄압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사태는 점점 더 꼬이고만 있고 국론분열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박 처장은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지금은 정부 대변인이다. 누구보다 사실에 충실해야 할 대변인이 사실을 왜곡해도 되는지 유감이다. 정부 차원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과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 신문에 난 것을 거론했을 뿐이라며 은근슬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언론의 가장 큰 사명은 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언론과 정권간에 타협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언론으로서 역할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느 경우에도 정권과 타협한 일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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