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남찬순]미국이 명심할 일

  • 입력 2001년 9월 28일 18시 37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 군사공격을 감행하지 않고 테러리스트들을 선별 추격하는 ‘새로운 전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충격에서 벗어나 다소 여유를 찾고 있는 분위기다.

전쟁도 근래에는 첨단무기를 사용해 속전속결주의로 나가는 경향이다. 68년 중동전은 6일만에 끝났고 걸프전도 실질적인 전투기간은 40일 정도였다. 그러나 미국측이 밝힌 이번 테러와의 전쟁은 속전속결주의가 아니며 노르망디상륙작전과 같은 작전개시일(D데이)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연기를 피워 굴속에 들어간 토끼가 제 발로 나오게 하듯 테러리스트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도록 차단작전을 펴겠다는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을 쫓는 길고 지루한 총격전이 예상된다. 걸프전같은 포성은 들리지 않더라도 테러리스트들과의 충돌은 지구촌 도처에서 발생할 것 같다.

▼무고한 소수민족 피해 없도록▼

미국이 이처럼 D데이가 없는 장기전으로 방향을 바꾼 데는 국제 여론이 적지 않은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랜 내전으로 국민 모두가 지쳐있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을60여개국이 달려들어 쑥대밭을 만든다한들, 결국은 미국의 속 풀이밖에 더 되겠느냐는 여론이 미 국내에서도 일고 있다. 사실 테러리스트들은 깊은 산중으로 도망가고 삶에 지친 아프가니스탄 국민만 또 상처를 입는다면 그 전쟁을 지지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문제는 ‘새로운 전쟁’의 방법론이다. 우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명분과 가치를 꾸준히 축적할 필요가 있다. 설득력 있는 전쟁이 되어야 한다. 미국은 이번 전쟁이 자유와 정의 그리고 민주사회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자유와 정의인가. 지구촌에는 소수민족 분리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이 독립과 자치를 외치며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생존이 자유와 정의보다 앞선다. 그러다 보니 가끔 테러리스트가 되어 문명사회의 이단아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체첸 민족주의자들이나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주의 이슬람교도들, 영국의 북아일랜드군, 터키의 쿠르드족, 인도의 카슈미르 분리주의자, 스리랑카의 타밀 반군들을 모두 테러리스트로 매도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미국이 전쟁을 하려는 대상은 이들이 아니라 인류문명을 파괴하고 지구촌의 평화를 깨려는 사악의 집단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구분과 한계가 모호한 게 현실이다. 테러리스트를 판별하는 기준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반 테러작전을 위해 국가간 타협과 협상을 하다보면 무고한 소수민족이나 민족주의자들이 테러리스트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미국은 항상 염두에 두며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절대로 엉뚱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은 당초 세계 각국에 대해 “우리를 택하든지 테러리스트들을 택하든지 하라”며 2분법적인 선택을 강요했다. 하루아침에 무고한 시민 6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가 어떠했는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해도 그 같은 선택을 강요한 행위는 각국의 독자적인 판단과 결정을 무시한 미국의 독선이요 오만이었다. 어느 나라든 2분법적 선택을 강요당한다면 거부감부터 생길 것이다. 일방주의적인 사고를 버리지 않는 한 미국은 절대로 국제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이분법적 선택 강요 말아야▼

현재 군사력만 놓고 보면 미국에 감히 도전할만한 나라는 없다. 한 때 경쟁관계였던 러시아는 힘을 잃었고 잠재적 도전국이라는 중국은 아직 미국과의 경쟁에 나설 처지가 못된다. 더구나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세계 주요국가들이 미국의 위치를 인정하고 지지한다. 그래서 2000년대의 시작과 함께 미국에 의한 평화(Pax Americana)시대도 열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미국의 능력에도 분명히 한계는 있다. 국제여론은 때때로 미국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한다. 테러리스트들과 끊임없는 숨바꼭질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그런 소모전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도 미국은 국제여론을 등에 업어야 한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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