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눈]필립 골럽/美경제 거품 잔치 끝났다

  • 입력 2001년 9월 26일 18시 28분


이른바 ‘새로운 패러다임’, 즉 신경제가 미국 경제의 기관차를 영원히 달리게 할 것처럼 여겨졌던 때를 기억하는가. 그것은 기대감이 만들어낸 신기루였다.

▼영원한 호황은 신기루였을 뿐▼

수년 동안 인플레 없이 성장만을 지속하던 미국 경제는 경기 둔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시다발 테러 참사는 미국 경제에 치명타를 안겨줬다. 미국 정부는 경제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지만 이 비극적 사건이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예측하기는 이르다. 이미 닷컴기업들은 거품이 꺼졌고 투자는 정체됐으며 은행의 대출도 심각하게 줄고 있다. 미국 경제의 보루였던 소비심리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 경제에 아주 나쁜 뉴스다.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세계 성장의 엔진이었다. 일본의 디플레이션과 유럽의 저성장, 빈발하는 국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마지막으로 의지할 만한 소비시장이었다. 미국의 강력한 소비의 힘은 미 국내는 물론 수출 의존적인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경제에 투자가 계속 이루어지도록 하는 원동력이었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혹독했던 97∼98년의 금융 위기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는 방파제가 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게 끝났다. 지금 세계는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을 동시에 겪고 있다. 세계화된 피드백 시스템에 따라 동아시아는 심각한 생산 감소 위기에 처해 있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신경제 비판론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지난 10년간 미국의 ‘경제 기적’은 상당 부분 부채 증가와 저축 감소, 미래의 부에 대한 그릇된 기대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신경제와 정보기술에 의한 생산성 향상 효과에 따라 미국 경제가 인플레 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생각은 사실이라기보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90년대 자산 가치의 인플레, 특히 닷컴 분야에서 자산 가치의 인플레를 유발했다.

가계와 기업은 순전히 미래 소득에 대한 기대 때문에 빚을 지게 됐다. 20년대와 마찬가지로 주식 투자와 자산 가치의 인플레는 부의 창조로 착각됐다. 언론의 부추김과 주식시장에서 엄청난 돈을 챙긴 ‘월스트리트의 큰손들’에 자극 받아 개인들은 빚을 끌어다 주식투자를 했다.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국가적 스포츠’(미국 가계의 50%가 주식투자를 했다)는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나스닥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사람들은 전날보다 부자가 된 채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소비도 붐을 이뤘다. 기업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여기저기 널린 자금을 조달 받으며 투자와 생산을 늘렸다. 90년대 말에 이르러 미국 가계와 기업의 누적부채와 저축은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150%와 0%로 사상 최다와 최저 기록을 세웠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거품경제였다. 그리고 다른 거품과 마찬가지로 거품경제는 터지면서 끝났다.

미국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비슷한 집단 착각에 사로잡혔었다. 자본시장이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할 것이란 그릇된 가설 때문에 국제금융기구와 서방 국가들은 금융 부문을 사상 최고로 자유화했다.

서방 정부들은 통제 책임을 포기했고 국경을 넘는 자본의 흐름을 막는 장벽은 무너졌다. 개발도상국들도 거대한 자본의 흐름에 문을 열었다. 개도국 시장에서 연간 12∼15%의 이득을 챙기는 탐욕스러운 국제자본가들은 개도국 시장이 흔들릴 때 돈을 빼서 이를 다시 미국 자본시장에 투자했다.

▼국가통제체제 되살릴 수밖에▼

금융 세계화는 새로운 형태의 취약성을 창조했다. 무역이나 거래 없이 엄청난 양의 세계적 자본 흐름을 창출하면서 자본 이동에 대한 국가의 규제 장벽을 제거했다. 이는 지역과 세계시장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세계의 모든 시장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그 결과 87년의 전 세계 주식시장 혼란과 94년의 멕시코 페소화 위기, 97∼98년의 동아시아의 금융 위기 등이 나타났다.

결국 국제사회는 다시 국가통제시스템을 되살려야 한다는 고뇌에 찬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야 실물경제와 금융분야 사이의 균형을 다시 잡아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동 아시아 국가들은 굳건한 지역 내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수출 주도 성장보다는 내수경제에 집중해 세계화된 시장의 힘에 노출되는 위험을 줄여야 할 것이다.

필립 골럽(프랑스 파리 제8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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