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레닌의 혁명적 삶 찾아가는 길 '레닌'

  • 입력 2001년 9월 21일 18시 40분


◇ 레닌/로버트 서비스 지음 정승현 홍민표 옮김/910쪽 1만8000원 시학사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전기라는 형식을 취하는 글들은 윤리성과 교훈성을 띠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아무리 객관적 또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 애쓴다 해도 윤리성이나 교훈성이라는 그물망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전기가 강력한 계몽적 성격을 지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출판계에는 ‘계몽의 서사’라 일컬을 수 있는 전기의 간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새로운 계몽의 시대’라 할 만하다.

계몽의 시대라 했거니와 이는 우리 사회가 새로운 이념적 좌표를 찾기 위한 모색의 과정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전기 혹은 평전이라는 이름의 책들이 앞 다퉈 출간되는 상황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위대한 인물’들의 생애에서 무엇을 발견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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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칼 마르크스, 레온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한나 아렌트 등 이른바 좌파에 속하는 인물들의 삶이 호소력을 얻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이 가로놓여 있는 셈이다.

잘 알고 있듯 레닌은 조직가이자 정치가였다. 그리고 그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신화적’ 인물이었다. 그에게 부여된 신화적 성격을 지워버리기란 요원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를 사상가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시선은 훨씬 자유로울 수 있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모든 사상은 현실에 뿌리를 둔다. 현실적 상황을 떠난 사상이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레닌을 사상가라 할 경우 그가 살았던 시대의 러시아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레닌은 전제주의 러시아를 억압과 착취와 부패가 판치는 세계로 파악한다. 이를 레닌 사상의 토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망명과 논쟁과 저항으로 이어지는 그의 생애는 ‘다른 삶’ 또는 ‘다른 세계’를 발견하기 위한 고난의 과정이었다. 그가 구상하고 실천한 혁명이란, 요컨대 현실이 강요하는 비인간적 상황을 돌파하는 것을 의미했다.

‘신흥귀족’ 출신이었던 그는 몽상가이자 테러리스트였으며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이념들은 러시아적 상황에서 재해석되고 재구성됐다. 혁명가로 살고 혁명가로 죽었던 그의 사유는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운동하기를 멈추는 사유는 이미 사유라 할 수 없다.

그의 생각이 왜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 가는지를 추적하는 이 책은 그래서 진지하고 흥미롭다. 우리가 레닌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실과 다른 삶을 구상하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레닌은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선태(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연구원·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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