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광현/美테러 中企로도 불똥

  • 입력 2001년 9월 16일 18시 37분


“약속시간 불과 2시간 전에 사고가 터졌습니다. 그 바람에 21만달러짜리 수출계약이 날아갔고 올해 겨울옷 장사는 완전히 물 건너갔어요.”(경기 부천시 의류 수출업체 T사)

“한 달 전부터 공을 들여오다 지난주에 만나 본격적인 상담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이제 그 30만달러짜리 수출 건은 기약 없게 됐습니다. 바이어가 출근하지 않아 미팅시간도 다시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서울 섬유직물 수출업체 S사)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사상 초유의 테러대참사로 세계 주가가 폭락하고 항공, 보험산업이직격탄을 맞았다. 그 불똥은 한국의 중소수출업체에까지 튀고 있다.

보석 수출업체 K사는 항공기 운항이 중단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보석은 모두 항공기로 수송되는 만큼 수출이 전면 중단됐기 때문이다. 금융시스템이 마비돼 수출대금 20만달러마저 입금이 되지 않아 환차손까지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사고 직후 한국무역협회가 설치한 창구에는 피해사례가 속속 접수됐다. 이미 84개사의 425건, 추정 금액으로 3315만달러에 이르는 수출 피해사례가 들어왔다.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늘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터진 9월 중순은 뉴욕 바이어들 사이에서 ‘시장 주간(Market Week)’이라고 불린다. 곧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등 ‘홀리데이 시즌’이 이어진다. 의류 선물용품의 절반이 이 시즌에 팔리는 최대 대목이다. 이번 테러대참사로 대미(對美) 수출업체 가운데 1년 장사를 망친 업체들이 수두룩하다.

‘베이징에서 일어난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미국 동부에 허리케인을 일으킨다’는 복잡계 경제이론이 있다. 미국에서 허리케인급 폭풍이 몰아쳤으니 한국의 경제가 입는 타격을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이번 테러사태는 자그마한 수출업체들을 포함한 한국경제가 세계경제와 한 바퀴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김광현<경제부>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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