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절제된 비상 경제대책이어야

  • 입력 2001년 9월 14일 18시 42분


가뜩이나 어려운 때에 발생한 미국 테러 참사는 이미 그 후유증을 우리 경제 곳곳에서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우려되는 것은 테러로 인한 직접적 영향보다 미국이 예고하고 있는 ‘전쟁 수준의 보복’이 실행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국제적 경제 혼란에 있다.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의 크기는 군사적 행동의 형태와 규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보복공격에 따른 범세계적 소비 위축과 피해 복구에 소요되는 재정 부담 등이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경계의 대상이다.

다행이라면 자본주의의 특성상 이 같은 사건적 요인에 의한 경제위축은 과거의 예를 볼 때 대개의 경우 회복 또한 대단히 빨랐다는 점이다. 테러 발생 직후 크게 요동했던 국제원자재 시장과 금융시장이 급속히 안정을 찾고 있는 것이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국내외 경제연구소들 또한 사태가 진정된 후에는 오히려 피해 규모를 능가하는 생산 유발 효과가 있었다는 전례들을 상기시키고 있다.

따라서 경제주체들이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긴장해서 정상적 경제활동을 회피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대비는 철저히 하되 중장기적으로 이번 사태를 경제회복의 기회로 삼는 지혜가 요구된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가 경제장관 회의를 여는 등 신속하게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위기의식 확산에 앞장서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유감이다. ‘안보와 경제에 최대의 위기’라든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 대책’ 등의 발언은 불필요하게 국민을 동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자제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대책의 핵심인 강제적 경기부양책이나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그 부작용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경기부양책의 경우 재정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기업과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을 해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경기를 띄우면 당장 내년 대선 정국에서 집권당에 유리할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망가지는 재정은 다음 정권에 고스란히 짐이 된다는 사실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만에 하나 이번 사태를 빌미로 정부가 실패한 경제정책의 결과들을 호도하거나 혹은 그동안 비판 여론이 두려워 실시하지 못했던 선심성 정책들을 추진하려 시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고통은 따르지만 우리 경제를 위해 꼭 필요했던 각종 불확실성의 제거에 나서는 것이 용기 있는 행동이다. 비상대책은 절제된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만 국민을 안심시키고 호응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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