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숭실대 교수 집단 단식농성 왜…

  • 입력 2001년 9월 11일 18시 53분


10일 오후 10시 서울 동작구 상도동 숭실대 캠퍼스.

건물마다 대형 플래카드와 대자보가 어지럽게 나붙어 있었다. 학생운동으로 얼룩졌던 80년대 대학교정의 어수선함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필승’ ‘절대 반대’라고 빨간 글씨로 쓰인 플래카드 뒤로 한경직 기념관 1층 대강당에서 108명의 교수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교수직 집단사퇴서에 차례로 서명을 했다.

어윤배(魚允培) 현 총장의 재임명 반대를 주장하는 교수들이 이날 무기한 집단 단식농성이라는 극한 투쟁을 선언하자 대학측은 2학기 시간표를 제출하지 않은 일부 교수들에 대해 1차로 직위해제를 통보했고 이에 다시 교수협의회측이 교수직 집단사퇴를 결의하는 자리였다. 9개월째 표류하던 숭실대 학내사태가 끝내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사태의 경위〓숭실대 학내분규는 지난해 12월 재단 이사회가 교수, 학생들이 중심이 된 총장추천위원회의 의견과 달리 어 총장의 연임을 결정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 후 이사회의 총장 연임결정에 반발하는 교수와 직원, 학생들로 구성된 ‘총장퇴진을 위한 범숭실인 공동투쟁위원회’가 올 3월 결성됐고 ‘총장 출근저지 투쟁’과 노조와 학생들의 파업, 수업거부가 이어졌다.

장기전으로 치닫던 숭실대 사태는 지난달 초 재단측이 분규 이후 처음으로 임시 이사회를 소집, 한때 해결의 가닥을 잡는 듯했으나 재단측의 입장변화가 없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말 교내 전산망 내 신학기 개강관련 자료가 삭제된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공동투쟁위원회측의 소행으로 의심한 재단측과 ‘학사행정 파행의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몰려는 마녀사냥’이라는 공동투쟁위원회의 공방이 가속화돼 양측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쟁점〓교수협의회(회장 김홍진·金鴻振)는 총장 재임명을 반대하는 이유로 어 총장이 교수들의 ‘도덕적 신뢰’를 상실했다는 점과 행정수행 능력 면에서 ‘실패한 총장’임을 내세우고 있다.

어 총장이 재임기간 중 교수임용과 학과장 임명 등에서 교수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독단적, 비민주적으로 학교운영을 해왔고 이로 인해 교수들로부터 ‘도덕적 신뢰’를 상실했다는 것. 교수협의회측은 99년 4월과 지난해 5월 두 차례 교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총장 업무수행능력 중간평가에서 85%에 달하는 교수들이 부정적 평가를 내린 ‘실패한 총장’이라면서 총장의 무능을 문제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학측은 “총장 선임은 재단 이사회의 고유 권한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임명한 총장에 대해 교수협의회측이 반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어 총장이 재임 중 불법이나 비리 등을 저지른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고 오히려 재정 기반을 튼튼히 하는 등 학교발전에 기여했다는 것. 대학측에 따르면 어 총장은 IMF 재정난 속에서도 학교 재정을 IMF 이전의 3배에 가까운 800억원으로 확충했으며 정보화대학 등 특화사업 추진으로 대외 이미지를 개선했다는 것이다.

이 대학 기획조정실장인 이윤식(李允植) 행정학과 교수는 두 차례의 중간평가 역시 반대입장을 가진 일부 교수들이 편파적으로 추진한 결과라면서 “당시 평가에 참여한 교수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전망〓10일 학교측의 직위해제 통보와 이에 맞선 교수들의 집단사퇴 결의로 극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양측은 현재 중재나 대화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당분간 학내사태가 진정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숭실대는 교내 전산망의 마비로 개강을 10일씩이나 늦춘 불안정한 상황에서 2학기를 맞았다. 여기에다 교수들이 집단사표라는 최후의 카드마저 사용하게 될 경우 학사행정이 전면적으로 마비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창원기자>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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