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동교동계·비서실장 출신' 당 대표

  • 입력 2001년 9월 10일 18시 41분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어제 ‘형식상의 만장일치’로 한광옥(韓光玉) 대표 인준안을 처리했으나 당내 갈등과 내분의 요인마저 해소된 것은 아니다. 당 총재이자 대통령인 인사권자의 권위를 우선 고려한 데 따른 미봉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어제 회의가 표결 처리 및 인준 연기 주장 등으로 논란을 거듭했던 점으로만 보아도 갈등과 내분의 소지는 여전하다.

일부 최고위원과 소장파 의원들의 한 대표에 대한 비토 및 당 저변에 깔린 불만이 한 대표 개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대통령비서실장이 곧바로 당 대표로 내려오는 ‘청와대 직할시스템’에 있다고 볼 때 결국 이번 문제의 근원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리더십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집권 여당 대표로 곧바로 내려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은’ 형식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당의 자율성과 국회의 독립성이란 민주정치의 근본과 직결된 문제다. 이 정부 들어 집권 여당은 줄곧 청와대 직할체제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것은 의회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근본 문제를 보지 않고 단지 정권안정을 위한 친정체제 강화에 급급해서는 쇄신과는 거리가 먼 인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친정체제의 핵심이 이른바 동교동계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이 ‘동교동계 해체’를 요구한 것을 두고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이 차 한잔 마시는데 그런 것까지 하지 말란 말이냐” 식으로 둘러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억지소리에 불과하다.

아무튼 한 대표는 이제 당내 갈등을 민주적으로 수습하고 야당의 협조를 얻어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풀어나가야 할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그러자면 ‘비서실장의 충성심’만으로는 안 된다. ‘당 대표의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면 청와대에 대해서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계보와의 유착도 끊어야 한다. 그럴 수 있어야만 그 자신 ‘쇄신의 대상’에서 쇄신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럴 때에만 ‘형식적 만장일치’가 아닌 실질적인 당 대표로 인준 받는 것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국민은 이번 당정 쇄신에 실망하고 있다. 민주당 내부의 불만 역시 국민의 소리라는 점을 한 대표는 절감해야 한다. 우리는 ‘동교동계·비서실장 출신’의 집권당 대표를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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