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 입력 2001년 9월 7일 18시 35분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고병권 지음/ 320쪽 1만3000원 소명출판

대체 니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니체의 사상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의 ‘니체’ 안에 담아 두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더욱더 곤란한 지점에 스스로 서 있다. 제목이나 서문에서 강조하듯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천 개의 젖가슴’ ‘천 개의 가면’ 등 하나로 환원할 수 없는 다양성을 강조하는 데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천 개’를 따라 ‘천 개의 니체’가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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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은 이런 ‘과잉’을 당혹스럽게 느끼는 것이 모든 것을 하나로 귀착시키는 데 익숙한 낡은 습속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바구니로 담을 수 없는 과잉을 특징으로 하지만 우리가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하나로 담을 수 없는 사상을 사유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기이한 전략을 선택한다. 자신이 곧바로 니체가 되어 니체 입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 책 어디서도 니체에 대해 거리를 두고 평가를 하는 비평가나 주석가의 발언은 단 한 구절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하나의 니체에서 그와 비슷한, 하지만 동일하다고 말하긴 힘든 다른 니체로 옮겨다니며 말한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니체를 말하면서 사실은 니체의 입으로 ‘자기’를 말하고 있다. 수많은 니체 중 한 묶음의 니체의 입을 빌어 자신이 사유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거기에는 다른 목소리가 강한 톤으로 섞여 있다. 마르크스, 스피노자,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 들뢰즈…. 이로써 자신이 니체가 되면서, 니체에게 또 하나의 니체를 만들어 돌려주고 있다. 천 개의 니체로도 모자란다는 듯이. 따라서 그는 수많은 니체의 편린들을 하나로 묶어서 진정한 니체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비난을 이미 저만큼 벗어나고 있다.

그가 이런 식으로 니체가 됨으로써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은 니체를 이용해 독자를 촉발하고 변용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수많은 니체의 강렬한 문장이 우리에게 직접 날아든다. “삶을 사랑하라”고. 낡은 습속에 길든 눈을 던지고 삶을 통찰하는 천 개의 눈을 얻으라고. 영원한 것은 오직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밖에 없으며, 각각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그 다양함을, 그 차이들을 긍정하고 즐기라고. 그런 차이와 다양성이 공존하게 하는 기술을 배우라고. 그게 바로 ‘위대한 정치’라고. 또 ‘나’라는 동일성 안에 갇힌 삶을 변이시키고, ‘인간’이란 이름의 경계를 넘어서라고. 그리하여 이질성과 다양성이 상생하는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거기에 나는 ‘코뮨주의’라는 이름을 슬며시 달아주고 싶다.

우리는 이런저런 철학책을 읽는다. 그러나 번역서가 아니곤 정작 철학자를 만나기란 별로 쉽지 않다. 그래서, 주석서의 형식으로 씌어진 이 책에서 주석가가 아닌 ‘철학자’를 만나는 것은 더욱더 기쁜 일이다.

이 진 경(연구공간 ‘너머’ 연구원·사회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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