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수/청소년 性보호 다시보기

  • 입력 2001년 9월 6일 18시 34분


최근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풍속 사범과 성범죄자 169명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런 조치가 청소년 성보호를 위해 실효성이 있는지 아니면 범죄자의 인격을 무시한 가혹한 처사인지를 놓고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性자유화 불구 보호 강화해야▼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적극적 대처와는 달리 법원은 성풍속 사범에 대해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15세 가출소녀와 성관계를 맺고 숙식과 현금 4000원 내지 1만4000원을 준 20대 남성 5명에게 ‘대가성이 없다’고 무죄를 선고하는가 하면, 16세 소녀와 금품을 약속하고 성관계를 가진 뒤 약속한 돈을 주지 않은 사안은 ‘위계에 의한 청소년 간음’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청소년의 성을 폭넓게 보호하지 않으면 청소년이 악랄한 성착취의 희생자가 되기 쉽기 때문에 통제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청소년 성보호를 확대하면 사생활 또는 애정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쿼바디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 못지 않게 성풍속도 급속히 변하고 있다. 안방 연속극에 자주 등장하는 불륜은 이제 개인적인 사생활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다. 러브호텔의 범람이나 인터넷 채팅, 청소년성매매 붐도 이 같은 변화의 사례들이다. 정조나 정절 따위는 이미 성인들 스스로 달가워하지 않는 기피언어가 돼버렸다. 간통과 매춘알선 등 성풍속 침해행위는 형법의 탈윤리화 모토 아래 범죄 목록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성풍속 침해사범에 대한 관대함과 달리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는 세계적 추세이고, 한국의 성폭력 특별법도 이런 조류의 반영이다. 또한 성풍속 위반 사례의 비범죄화 경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풍속 사범, 예컨대 아동매춘, 아동 포르노, 미성년자와의 동성애 등은 더욱 강화된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96년 미국 뉴저지주 메간법을 필두로 등장한 ‘현대판 주홍글씨’, 성범죄자의 거주 이전 신고와 주민공시제 등은 그만큼 청소년에 대한 성착취와 학대가 심각해졌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해졌음을 말해준다. 한국의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특별법도 이 같은 대응책의 일환이다.

근대 형법의 고전적인 도식에 따른다면 사회정책의 최후 수단이 형사정책이요, 형사정책의 최후수단이 형법이다. 사회의 의식과 가치관이 변하면 사회정책 형사정책 형법도 따라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각에 비춰 보면 청소년 성보호를 위한 특별법상의 제재수단 강화는 성풍속의 자유화 물결과 분명히 모순된다.

청소년의 성, 그것은 근대 형법의 자유화 담론이 수용할 수 없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토픽이다. 일반적인 성의 자유화 조류가 용해할 수 없는 하나의 모순덩어리인 셈이다. 이 모순덩어리는 최소·최후 수단인 형법관에서는 소화해 낼 수 없다. 그것은 후기 현대사회의 새로운 위험 내지 해소할 수 없는 난제에 속한다. 마치 근대의 물길을 타고 내려와 하구에서 포스트모던의 파도와 부딪치면서 생성된 삼각주와도 같다.

그런데 근대 형법의 물길에서 벗어난 삼각주의 난제들을 풀기 위해 제정된 특별법들은 하나같이 근대 형법의 이념체계와 모순되는 자기만의 논리를 갖고 있다. 이 점에서 청소년 성보호법은 포스트모던법의 전형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 법률의 규정은 가해자를 위한 보편적 자유의 담론이 아니라 미성년자의 성을 위한 담론의 시각에서 해석되고 적용돼야 한다.

▼신상공개 구체적이어야 효과▼

청소년 성범죄자의 신상공개도 변화된 패러다임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신상공개의 정도와 범위, 그리고 방법이다. 청소년의 성을 거래대상으로 한 성풍속 사범에 대해 지금보다 더 엄하게 제재의 고삐를 잡아당겨야 하겠지만 신상공개까지 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청소년에 대한 성폭행 범죄자들에게는 재범의 위험이 있는 한 무거운 처벌 외에 일종의 보안처분인 신상공개까지 필요하다.

다만 현재 수준의 신상공개는 잠재적인 피해자들의 안전보다 범인의 도덕적 수치심 유발에 중점을 두고 있어 재범 방지에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적어도 범인 주변의 사람들이 경계로 삼을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공시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신상공개가 일종의 위험 예고 표지판 구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일수(고려대 교수·법학 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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