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기업 내부정보 못 빼내면 끝장"…죽기살기 정보전쟁

  • 입력 2001년 8월 28일 18시 40분


전자회사 출신의 애널리스트 A씨는 요즘도 옛 직장 동료들과 연락을 하며 가끔씩은 가족모임도 갖는다. 얼마 전 경쟁 증권사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월별 매출분석 보고서가 나오자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은 그는 ‘정보원 관리에 좀 더 신경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기업 방문시 학교 동문이나 지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식사 접대를 하거나 다른 기업의 투자정보를 슬쩍 흘려주기도 한다. A씨는 “월별 매출 현황이나 제조 원가, 재고 동향, 제품 생산 비중 변화 등의 고급 정보는 정확한 기업분석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내부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며 “직장과 펀드매니저에게 인정받는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 정보원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털어놨다.

여의도 증권가의 정보전쟁이 불붙고 있다. 증권가의 정보전이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실적투자 패턴과 함께 기업분석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기업의 고급 내부 정보를 빼내려는 애널리스트간의 정보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27일 회사의 내부 기밀을 증권사에 유출한 혐의로 삼성전자 직원이 구속된 것은 이런 정보전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나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 등 시가총액 상위 기업의 경우에는 거래 수수료가 높아 회사 수익에 큰 영향을 주고 파생상품이나 외국인, 법인영업 등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죽기 살기 식의 정보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주요 기업들이 경쟁 관계 등을 고려해 생산 판매 등 실적과 관련한 세부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애널리스트들의 내부 인맥 활용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 업종의 경우에는 삼성전자 출신 애널리스트의 몸값이 치솟고 있는데 이들이 보유한 기업 내부 인맥은 실제로 증권사 수익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기업 실무자와 애널리스트간의 ‘뒷거래’도 생겨나게 됐다. 실제로 지난해 말에는 삼성전자의 한 직원이 증권사에 정보를 제공한 것이 발각돼 즉시 해임조치를 당했고 이번 기밀유출 사건에 연루된 모증권사도 구속된 이모씨를 애널리스트로 스카우트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내부 기밀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황을 담당하는 스트래티지스트들도 투자정보를 모으기 위해 안테나를 세워 놓기는 마찬가지. 이들은 다른 증권사 스트래티지스트들과 매주 개별적인 식사모임 등을 열어 기업 정보를 공유하고 여기서 취합된 정보는 확인작업을 통해 영업정보로 활용한다. 이들 정보 중 일부가 메신저프로그램 등을 통해 증시에 확산되고 개인투자자들은 이 ‘떡고물’을 얻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증권거래소와 금융감독원도 작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5명 안팎으로 구성된 정보팀을 운영중인데 업계에서는 이들 팀이 수집한 정보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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