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완벽한 거짓말탐지 멀지 않았다

  • 입력 2001년 8월 22일 18시 30분


최근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는 피검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여기서 말하는 거짓말 탐지기는 폴리그래프(Polygraph). 혈압 땀 호흡 따위의 생리적 변화를 측정해 거짓말 여부를 가려내는 장치이다. 폴리그래프 조사는 1920년대부터 거의 유일무이한 거짓말 탐지기술로 사용됐지만 신뢰성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냉정한 거짓말쟁이가 무죄로, 신경이 예민한 결백한 사람이 유죄로 뒤바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법원에서는 폴리그래프 조사 결과를 피고측의 증거로 제시할 수 있으며 범죄 수사는 물론 직원 채용에도 활용된다. 미국 정부는 국립연구소의 과학자들에게 폴리그래프 조사를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 이스라엘 일본의 정보기관에서 오래 전부터 직원을 선발할 때 폴리그래프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폴리그래프는 정서 반응에 의존하므로 엉뚱한 결과가 나올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정서 대신에 인지 과정을 이용하는 방법이 모색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1959년 미국의 데이비드 라이켄 교수가 제안한 유죄 지식 검사(Guilty Knowledge Test).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의 뇌 안에 범행에 관련된 정보가 저장돼 있으므로 뇌를 뒤져 유죄의 단서를 찾아내야 한다는 발상이다. 말하자면 범죄를 계획, 실행, 기억하는 것은 뇌이기 때문에 뇌 안에 유죄의 증거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뇌 안에 숨겨진 유죄 지식의 흔적을 추적하는 방법이다. 현재로서는 세 가지 기술이 주목을 받고 있다.

먼저 미국의 로렌스 파웰이 ‘뇌 지문감식’이라고 명명한 거짓말 탐지 기술이 가장 앞서 있다. 피검사자의 머리 위에 10여개의 미세 전극이 내장된 장치를 씌우고 범죄 장면을 컴퓨터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뇌의 반응을 검사하는 방법이다. 피검사자가 범죄를 부인하려 들고 심지어 범죄를 기억조차 하기 싫어할지라도 뇌가 주인을 배반해서 범행을 자백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파웰의 뇌 지문감식은 뇌파를 이용한다. 뇌는 익숙한 그림이나 글자를 지각할 때 P300이라 명명된 뇌파를 발생한다. 요컨대 이 뇌파의 존재 여부로 범인 여부를 가려낸다. 파웰은 이 연구 결과를 1991년 학술지에 발표했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2001년 들어 갑자기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1978년 당시 17세의 흑인이 살인죄로 종신형을 살게 된 사건에 대해 2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P300 증거를 제시해 무죄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파웰은 이 흑인의 뇌가 범죄 장면에 대해서는 반응을 하지 않지만 그가 알리바이로 내세우는 음악회 관람과 관련된 문장에 강력히 반응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뇌에 저장된 유죄 지식을 탐색하는 두번째 방법은 미국 국방부의 자금으로 하버드대 심리학자인 스티븐 코슬린이 개발하고 있는 뇌 영상기술이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를 주사해 거짓말을 할 때 뇌의 여러 부위에서 일어나는 활동에 따라 참말과 거짓말을 구별하는 기술이다. 아직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거짓말 탐지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접근방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번째 거짓말 탐지기술은 뇌 지문감식처럼 머리에 미세 전극을 사용할 필요도 없고, 자기공명영상처럼 첨단기기가 없어도 되는 간단하지만 놀랍도록 신뢰성이 높은 방법이다. 단지 질문에 대한 반응시간을 측정해 머릿속의 유죄 지식을 판독해낸다. 미국의 트래비스 세이머 교수는 거짓말하는 사람은 여러 차례 연습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보다 2배 가까이 늦게 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1년 2월 발표된 이 방법은 퍼스널 컴퓨터만 있으면 가능한 유죄지식 검사기법이므로 높이 평가된다.

이처럼 기계로 범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기법이 출현하자 일각에서는 묵비권이 쓸모 없게 될 것이라고 푸념한다. 그러나 완벽한 거짓말 탐지기술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돼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사람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게 순리일 듯 싶다. 사족 한마디. 거짓말 탐지기법이 제 아무리 발달해도 이 세상에서 거짓말쟁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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