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이런 언론개혁

  • 입력 2001년 8월 20일 18시 28분


신호등이 파란 불에서 막 빨간 불로 바뀌는데 여러 사람이 우르르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의경이 그 중 한 사람을 붙잡아 무단횡단을 했다며 벌금딱지를 내밀었다. 붙잡힌 사람이 항의했다.

“아니, 저 사람들은 놔두고 왜 나만 붙잡는 거요?”

의경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아저씨는 낚시터 고기 다 잡습니까?”

재수 없는 놈(고기)만 잡히지 않느냐는 소리다. 이럴 경우 법치(法治)인가? 아니다. 비록 의경의 법 집행에 하자는 없다고 해도 법치는 아니다. 형평성을 현저히 해쳤기 때문이다.

한적한 지방도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고개를 넘어서자 숨어있던 경찰이 나타났다. 제한속도를 초과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또한 단속의 법적 근거는 있다고 해도 법치는 아니다. 범법을 예방하기는커녕 함정을 파놓았기 때문이다.

더욱 고약한 것은 법을 앞세운 통치권자의 자의적(恣意的) 권력행사다. 이를테면 괘씸죄로 찍어 처벌하는 표적수사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는데 이런 경우 아무리 법의 내용이 옳아도 법치는 아니다.

언론 사주 3명이 구속됐다. 조세포탈 및 횡령 혐의다. 검찰의 구속영장 신청과 법관의 구속 판단이란 절차 자체는 시빗거리가 아니다. 혐의사실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다. 그렇다면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와 사주 3명의 구속은 법치의 결과인가. 그렇게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왜 그런가. 조세정의를 앞세운 언론 길들이기란, 정치적 목적의 자의성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개혁이란 미명이 결국 세무조사를 통해 이 정부에 비판적인 특정 신문사 사주를 구속하는 것으로 드러난 명백한 현실 앞에서 아무리 정치적 의도를 부정한들 설득력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약 이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한 점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면 어찌 이 문제가 국론 분열사태에까지 이르렀으며, 사회 각계 인사들이 언론자유 위축을 우려하겠는가.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세무조사를 통해 특정 신문사 사주를 구속하는 것이 언론개혁의 목표냐는 점이다. 그 역시 언론개혁이라고 강변하자면 그렇게 해서 이뤄진 언론개혁의 성과가 무엇인지, 그 성과가 우리의 민주주의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어느 만큼 기여할 것인지 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언론개혁이냐는 본질적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이 정부가 동아 조선 등 비판적 신문을 손보기로 한 데는 이들 신문이 언론시장을 독점한 채 여론의 다양성을 차단하고 일방적인 비판으로 정부를 흔들고 있다는 반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반감 또한 대단히 일방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여론의 다양성이 큰 폭으로 늘어난 때도 없기 때문이다. 신문들간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색깔이 선명하고, 신문과 방송간, 신문과 신문간 쟁점을 보는 시각의 차별성도 뚜렷하다. 더구나 대중에 미치는 ‘친여방송’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따라서 동아 조선 등 특정신문 때문에 개혁이 혼선을 빚고 이 정부의 인기가 떨어졌다고 한다면 실로 난센스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민심부터 헤아릴 일이다.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 대한 비판은 20세기 이후 미국 등 언론선진국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비판의 주제는 자본(광고주)이 편집 방침을 지배하고 있다, 언론은 종종 중요한 것보다 표면적이고 선정적인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언론은 정당한 이유 없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

오늘 우리 언론도 이러한 비판 주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실질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의 경우 언론의 최우선 과제는 여전히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한 과제다. 취약한 재정으로는 자본이나 사회 각 이익단체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자유와 언론사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근본문제는 도외시한 채 특정 신문사를 타깃으로 세무조사부터 벌인대서야 진정한 언론개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서둘러 사주를 구속하고 엄청난 추징금으로 신문사의 존립마저 위협하는 상황은 언론개혁이 아니다. 언론탄압이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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