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경서/구조조정 고삐 다시 당기자

  • 입력 2001년 8월 7일 18시 28분


최근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상황과 관련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흔히 이들 보고서는 각 기관에 소속된 전문가들이 각국을 방문해 얻은 자료와 면담 등을 토대로 작성된다.

하지만 후진국일수록 대부분의 국내자료는 자국어로 작성돼 있어 이를 영어로 번역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보의 손실이 발생하는 데 이는 이들 보고서들이 지닌 한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료와 정보의 확보 측면에서 한걸음 뒤질 수밖에 없는 국외자의 보고서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들 보고서의 상대적인 객관성과 이를 받아들이는 내부자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이들 보고서가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듯이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경제 내의 불확실성을 축소하고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확대하며, 기업 및 공공 부문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라는 주장 등은 아직도 우리 경제가 기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보고서를 읽으면서 다소 의아스러운 것은 이들 보고서가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있거나 그들 자신이 과거에 주장했던 것과는 다소 상치되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IMF 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구조조정 노력에 대해 비교적 높은 점수를 주면서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원인의 한가지로 손실분담에 대한 채권금융기관간의 이해상충과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과거 정부의 지시에 의해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금융정책관행이 개선되는 징후로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되는 게 타당하다. 98년에는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을 다그치던 그들이 최근의 성장률 저하에 대해서는 경기 진작을 위해 금리인하와 재정확대로 대응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현 정권은 경제위기와 함께 출범해 위기탈출에는 성공했으나 일시적 자만감에 빠져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춘 바 있다. 이제는 국내경기가 나빠지자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은 상호보완적이다”라는 논리를 펴면서 10조원에 달하는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경제침체로 모든 기업이 망하게 생겼다면 경쟁력 있는 기업의 생존을 의미하는 구조조정의 의미도 상실된다는 점에서 양자는 보완적일 수 있다. 하지만 경기부양을 하면 당장 통화 공급과 소비가 늘어 퇴출돼야 할 기업에 목숨을 연명할 기회를 제공하고, 이는 우량 기업에 공급될 자금을 소진하는 동시에 때로는 기업간 불공정 경쟁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은 배타적 성격이 보다 강하다.

사실상 그동안의 구조조정으로 한국경제는 외환위기를 벗어나는 데 성공하고 기업의 재무구조와 투자관행도 다소 개선됐으나 진정한 구조조정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예를 들어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등에서 나타난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금융기관의 자율성 상실 문제는 정부와 금융기관 사이에 형성돼 있는 상호관계의 후진성에 기인하고 있다.

후진적 국가지배구조(national governance)하에서 별다른 견제 없이 비대해진 정부와 공공부문은 구조조정의 사각지대에서 자신의 기득권과 영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규제의 벽을 허물지 않는다. 물론 정부 권력의 비대화를 막기 위해 국회가 존재하나 비전문적이고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정치인들은 국민의 불쾌지수만 높일 뿐이다. 아직도 기업은 선별적 시장진입과 사업권 확보라는 특혜를 부여받기 위해 대정부 로비에 경영 에너지를 소진한다.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은 금융정책이란 미명 아래 사실은 재정정책이나 공적자금이 담당해야 할 정부의 역할까지 부담하면서 자율성을 상실하고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책임지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사실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은 우리가 더 잘 알고 있고 나름대로 대안도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자가 하는 말은 왠지 설득력이 없고 누군가 시비를 걸면 탁상공론으로 시간을 보내고 만다. 그런 점에서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번에는 또 외국인들이 뭐라고 하나 귀를 기울이게 된다. 기왕 훈수 한마디 하는 김에 우리 입으로 하기 어려운 말들을 좀 더 해준다면 더욱 고마울 뿐이다.

<박경서 고려대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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