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마천루와 한국경제

  • 입력 2001년 7월 23일 18시 28분


미국 토목공학회는 최근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밀레니엄 10대 토목공학 걸작’중 하나로 선정했다. 지난 1000년 동안 인류가 만든 건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하고 뉴욕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이라면 한번쯤 들르고 싶어하는 명물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건축 당시부터 그런 평가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공황시절 하루 3000명의 고용창출을 위해 410일 만에 급속히 지어진 건물에 불과했다.

▷꼭 70년 전인 1931년에 완공된 이 빌딩은 당시 건축기술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높이인 102층 381m의 위용을 자랑하며 세계 최고(最高)의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이 기록을 그냥 둘 리 없었다. 무려 40년이 지난 다음의 일이지만 여하튼 1971년 맨해튼에 세계무역센터가 들어서면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갖고 있던 신화적 기록들은 사라졌다. 1996년 세계 최고 건물의 타이틀은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의 452m짜리 페트로나스 타워로 넘어갔다.

▷그러나 최근 이런 기록들을 모두 도토리 키재기 수준으로 낮춰버리는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중국 상하이(上海)시가 1128m 높이의 300층짜리 초대형 건물을 세우기로 했다는 것이다. 페트로나스 타워의 두배반 높이인 이 건물은 약 10만명을 수용하게 된다던가. 경제성만을 고려할 때 그렇게 높은 빌딩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중국이 노리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는 상징성일 것이다.

▷중국의 건축기술이 그런 건물을 욕심낼 만큼 발전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여기에 소요되는 천문학적 건설비를 투입할 수 있다는 이 나라의 자신감은 우리를 주눅들게 한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중국의 경제발전 모델이었지만 외환위기 때 우리는 이미 중국에 달러를 구걸해야 했다. 그리고 오늘날 무역전쟁에서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중국을 이길 상품이 거의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들이 한창 국제시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터에 정쟁과 이념의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가 더욱 왜소하게 느껴진다.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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