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병욱/여름 방학

  • 입력 2001년 7월 19일 18시 33분


얼마 전 어느 신문에 실린 한 학부모의 칼럼은 방학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속셈학원 다녀와 점심 먹고,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이나 게임을 한두 시간 하다가, 롤러스케이트 타고 놀이터 한 바퀴 돌고, 피아노나 수영 배우러 갔다가, 저녁 먹고 텔레비전 보다가 자는 것-이게 대부분 초등학교 아이들의 방학생활이 아닌가 싶다. 방학 전과 비교하면 학교가 학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쯤 되면 신나는 방학이 아니라 지겨운 방학이 아닌가?’

▷대부분의 초중고교가 이번 주부터 한달 여의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신이 난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교실에서 뛰쳐나가는 신문 사진을 보며 어린 시절 방학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고 슬며시 웃음 짓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의 칼럼도 지적했듯 상당수 학생들은 부푼 기대로 방학을 맞았다가 지겨워하고 실망하며 방학을 끝내게 된다고 한다. 모자라는 학과를 보충하라는 부모의 채근에 밀려 학원순례에 나서는 학생들이 부지기수고 그러지 않더라도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몰라 지루한 방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방학이란 말 그대로 공부에서 ‘해방’되는 것이어야 할텐데 현실은 영 딴판이라는 얘기다. 벌써 ‘여름방학 영어 실전’ ‘수학 총정리’ 등의 광고를 내건 학원에 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사정이 괜찮은 가정의 자녀들은 앞다퉈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고 있다. 몇 해 전엔 방학중 학원수업에 지친 초등학생 어린이가 담임선생에게 ‘방학이 싫어요.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는데, 학원엔 친구도 없고…’라는 편지를 써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교육자들은 방학을 방학답게 아이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 교육과 사교육이 임무교대하듯 학교에서 학원으로 옮겨가기만한 방학은 아이들의 성숙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학원에 보내지 않는 경우에도 아이들이 충분한 계획을 세워 하고 싶었으나 못했던 일을 실천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한 후 ‘나에겐 방학이 없었고 그건 부모 탓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