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日방패 된 '무라야마 담화'

  • 입력 2001년 7월 18일 18시 31분


일본 정부는 17일 각의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공식입장을 정리했다. 야당의 질의에 대한 답변서 성격이었다.

답변서는 “오늘날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전몰자의 귀중한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그런 기분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 답변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담화에 대한 언급이다. 답변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방침은 무라야마 담화에서 제시된 견해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여러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행한 사죄가 아직도 일본 정부의 공식견해이며 유효하다는 주장이다.

일본 정부는 9일 한국 정부의 역사왜곡 교과서 수정 요구를 거부할 때도 같은 논리로 무라야마 담화를 인용한 것을 비롯해 요즘은 한일간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무라야마 담화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무라야마 담화가 나온 당시 배경을 살펴보면 일본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자민당은 1955년 이후 유지해온 단독정권 수립에 실패하고 야당과 연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총리로 추대된 사람이 무라야마 사회당 당수였다. 그가 총리가 아니었다면 ‘담화’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많은 자민당 의원들은 그의 담화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민당이 주도하는 일본 정부가 툭하면 무라야마 담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자 11일 열렸던 여야 7개정당 당수 토론회에서 한 패널리스트는 “요즘 정부는 아쉽기만 하면 무라야마 담화를 내세운다”고 따끔하게 꼬집기까지 했다.

일본의 침략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의 내용은 평가할 만하다.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이를 인정한다면 이제는 담화를 방패로 삼을 것이 아니라 담화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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