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언론 女帝의 별세

  • 입력 2001년 7월 18일 18시 19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명예회장인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는 대주주의 딸이었지만 포스트지의 발행인이 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 유진 메이어는 그녀의 남편인 필립 그레이엄을 신뢰해 사위에게 회사를 맡겼다. 그러나 남편 필립씨는 자매지 뉴스위크의 여기자와 사랑에 빠져 이혼을 요구하는가 하면 포스트지를 차지하려는 음모까지 꾸몄다. 그는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사냥총으로 자살했다. 그녀는 갑자기 밀려온 가정적인 비극으로 황망 중에 경영을 맡아 포스트를 위대한 신문으로 키웠다.

▷그레이엄 여사는 언론 자유가 언론인들의 천부적 권리임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확인하고 철저히 보장했다. 포스트지의 대기자 로버트 카이저는 그레이엄 여사를 추모하는 칼럼에서 ‘그녀는 경영인으로서 그리고 글 쓰는 사람으로서 선구자적인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카이저 대기자는 그녀가 이상적인 사주의 전형이라면서 오늘의 포스트지가 있게 된 것은 바로 그녀의 용기 있고 탁월한 능력 때문이라고 찬양했다.

▷그녀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쫓아낸 워터게이트사건이나 베트남전쟁에 관한 국방부 기밀문서 폭로 등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사를 보도할 때는 전 사원과 함께 고민했다. 포스트지가 워터게이트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질 때 다른 신문들은 대부분 침묵했다. 닉슨 대통령은 포스트지 계열 방송국 면허를 갱신해주지 않겠다는 압력까지 넣었다. 통치권자의 분노에 맞서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포스트지가 두렵고 외로운 싸움을 하는 동안 그녀는 편집자와 기자들을 신임하며 적극적으로 그들의 편에 서 있었다.

▷그레이엄 여사는 회고록에서 일생에 가장 위대한 결정은 워터게이트나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것이 아니고 바로 벤저민 브래들리 편집국장을 기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브래들리씨는 26년 동안 편집국장을 맡아 그녀의 절대적인 신임과 지원 밑에서 포스트지를 미국의 수도에서 그리고 언론계에서 가장 강력한 신문으로 만들었다. 그레이엄 여사의 별세는 언론 자유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