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The Wimbledon Ghost…

  • 입력 2001년 7월 12일 14시 35분


필자가 테니스란 종목에 처음 빠지게 된 배경은 아마도 70년대 후반 즈음... 한국을 방문했던 ATP 프로 테니스 선수들의 시범경기를 통해서 였던 것 같다. 왼속 강서브의 소유자 로스코 테너, MBC가 방영했던 미국 드라마 "Eight is Enough"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딕 밴 패튼의 아들 빈센트 밴 패튼, 그리고 10대 돌풍 지미 아리아스...등의 선수들이 한국 땅을 밟으면서 보여준 테니스는 절로 "우와~" 소리를 내기에 충분했다.

80년대 초반부터 세계 테니스를 좀 더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테니스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곤 필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테니스 선수들의 모습이 몇 개 생기게 되었다. 시뻘건 클레이코트에서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데이비스컵 대회에 출전했던 프랑스의 'Reggae 머리' 야닉 노아.... '서브 앤 발리'란 '각도 (angle)의 예술'을 깨우치게 해 준 '테니스 천재' 존 맥켄로, '전통의 상징' 윔블던을 '가장 비 전통적인' 나이에 제패한 10대 센세이션 '붐붐 보리스 베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현실 속에서 재연해 준 프랑스 오픈 챔피언 마이클 창... 그리고 고란 이바니세비치.... 나의 고란 이바니세비치...

필자가 고란 이바니세비치를 처음 본 것은 아마도 89년 즈음 미국에서 열렸던 US Open이 아니었나 싶다. 총알 같은 서브와 폭탄같은 성질이 절묘히 (?) 조화되어 그랜드 슬램과 같은 빅 이벤트에선 '실력으로 보단' 난동으로 관중들의 웃음과 동정표를 사게 했던 철부지 고란 이바니세비치...

동유럽 축구의 강호 크로아티아 출신답게 테니스 공을 발등으로 드리블하던 10대 소년 고란 이바니세비치... 필자가 90년대 초반 '세계 테니스의 불모지'인 한국의 땅으로 돌아온 후론 이바니세비치가 지구 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테니스 선수'가 되어 버렸다. NHK에서 중계해 주던 윔블던을 제외하곤 도무지 그랜드 슬램을 국내에서 시청할 수 없었던 필자에겐 윔블던 경기 시청 만이 유일한 테니스 '연중 행사'가 되어 버렸고 90년 대의 윔블던은 고란 이바니세비치, 안드레 아가시, 피트 샘프라스의 독무대나 다름 없었다.

흙 냄새에 약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결점이 없는 테니스 선수라고 생각했던 '테니스의 로보캅' 피트 샘프라스를 응원할 수는 없었다. 바바라 스트라이젠드에서부터 브룩 쉴즈까지... 테니스 실력이 아니면 여자로라도 '기선을 제압했던' 아가씨를 응원할 수도 없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필자가 응원할 수 있었던 테니스 선수는 고란 이바니세비치 밖에 없었다. 그런 그는 92년 윔블던 결승에서 아가씨에게 패배, 94년 윔블던 결승에서 샘프라스에게 패배, 역시 98년 결승에서 샘프라스에게 패배... 윔블던 결승전 3회 진출, 3회 준우승... 이바니세비치의 스타일을 봤을 때 그는 잔디 코트 윔블던이 아니면 그 어떤 그랜드 슬램에서도 성공하기 어려운 타입이었다.

94년 준우승 때까지만 해도 아마도 이바니세비치의 머리 속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나, 이제 겨우 20대 초반이다. 언젠가 한번은 윔블던을 먹겠지..." 하고 말이다. 그리고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렇게 그랜드 슬램 결승에 복귀하는 일은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갖 좌절과 재기 끝에 4년 만에 컴백한 'All England Tennis Club의 Centre Court... 이바니세비치는 4년이란 세월이 무의미하게 샘프라스에게 또 한번 무릎을 꿇는다. 그리곤 필자도 테니스를 포기하게 되었다. 코 앞에 까지 온 윔블던 트로피를 세번씩이나 남의 손에 넘겨줘야 했던 이바니세비치의 운명, 그리고 신의 계시... 아무리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해도 이럴 순 없었다.

'이바니세비치의 어깨 위엔 킹콩 한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란 어느 전문가의 표현 대로 이바니세비치는 그 동안 윔블던 센터 코트를 장식했던 수 많은 '윔블던 유령들의 저주'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오늘... 고란 이바니세비치는 '윔블던 유령' 조차 감동시키고야 말았다. "오늘 밤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고란, 내일 니가 윔블던을 우승하고 평생 두 번 다시 라켓을 잡을 수 없게 되어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에 “난 그래도 상관 없으니 윔블던 만은 꼭 한번 우승하고 싶다”는 이바니세비치의 결승전 직전 인터뷰가 과연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유독 이바니세비치만큼은 철저하게 외면했던 윔블던의 유령들은 아마도 그 한마디의 '증언'에 센터 코트를 떠난 것 같다. 유령들 대신엔 천사들이 그의 뒤를 지켜주면서 말이다. 세상에 진정으로 원한다는 게 과연 무슨 말일까...? 테니스 선수 인생의 제일 밑바닥, 하수구 구멍으로 까지 몰락한 한 테니스 선수의 짐념과 의지의 결실은 이런 것이다. '다혈질 철부지' 고란 이바니세비치는 무엇을 진정으로 원할 때는 악덕한 유령들 조차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시켜 주었다.

윔블던 역사 상 최초의 Unseeded Champion 고란 이바니세비치...

"쟤는 어려운 나라, 어려운 환경에서 나온 선수라서 더 이쁘다" 라던 필자의 모친의 말씀이 떠 오른다. 아마도 윔블던 센터 코트를 맴도는 유령들도 이번 대회만큼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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