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장 쟁점과 전망]'先발표 後무마' 건립까진 산넘어 산

  • 입력 2001년 7월 9일 18시 46분


서울시가 9일 서울 시내에 처음으로 들어설 화장장 부지를 최종 확정했다. 99년 5월 SK가 추모공원 건립 기증 의향서를 제출해 화장장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2년 만에 낸 결론이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이나 해당 지자체의 반발을 무마하지 못한 채 서둘러 내린 결정이어서 실제 건립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중론.

▽서초구청과 주민의 결사항전 의지〓서초구는 이날 “해당 지자체와 협의도 없이 발표된 추모공원 부지는 지방자치 원칙을 배격한 반민주적 행정 사례”라며 “앞으로 발생하는 모든 불미스러운 상황의 책임은 전적으로 서울시장에게 있다”고 선언했다.

주민들도 같은 날 서초구청에 모여 청계산 등산로 봉쇄와 고속도로 점거시위 등 강경 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주민들은 특히 “부지 선정 절차와 과정에서 전직 여당 시의원이 개입한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폭로전과 함께 법적 대응도 불사할 방침이어서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화장장 건립에 따른 양측 입장

-서울시서초구청 및 주민
보상감정전문가의 감정평가를 거쳐 합리적인 보상을 하겠다.무조건 철회를 요구하며 보상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
인센티브지역 기반시설 확충.

추모공원 안팎에 주민의 경제활동과 관련된 시설 지원.

인센티브도 필요없다.
추가 화장장 건립5년 주기로 서남쪽 동북쪽에 추가로 건립.권역별 지역별 소규모 화장장 분산설치.

▽서울시가 내놓을 당근은〓화장장 주변에 들어설 상가 등을 지역 주민에게 우선 분양하고 마을회관이나 복지관을 건립해주겠다는 등 경제적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미봉책으로는 주민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어렵기 때문에 서울시 내부에서는 ‘그린벨트 해제’라는 메가톤급 보상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화장장 건설로 땅값 하락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현재 토지 용도인 그린벨트로 둔 채 땅을 수용하면 주민 불만을 잠재울 수 없다는 것.

고건(高建) 시장은 이날 발표장에서 “원지동 일대의 경우 그린벨트 해제 기준인 300가구 또는 1000명 이상이 살고 있는 마을이지만 흩어져 살고 있어서 해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며 “2차 광역계획 회의 과정에서 이 같은 불합리성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혀 그린벨트 해제를 준비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시 관계자는 “그린벨트를 해제하면 주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사 반대 강도가 수그러 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른 카드는 없나〓서울시는 앞으로 5년마다 15기 정도의 화장로를 갖춘 승화원(화장장)을 추가로 건립해 동 서 남 북 등 권역별로 화장시설을 확보한다는 계획도 준비해 놓고 있다. 다른 지역에도 화장장이 들어설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서초구의 ‘지역이기주의’를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고 시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화장장 건설 계획이 서울시 의도대로 추진될지 미지수다. 고 시장으로서는 사실상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건 ‘승부수’를 던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송진흡기자>jinhup@donga.com

▼부지 원지동은 어떤곳▼

서울시가 추모공원 부지로 최종발표한 원지동 76 일대는 속칭 ‘개나리골’로 불린다.

경부고속도로 양재 인터체인지에서 남쪽으로 800m 거리의 청계산 자락에 있는 개나리골은 지목 대부분이 전답과 임야로 구성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주민들 대부분이 비닐하우스에 채소를 재배하는 근교 원예업에 종사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한국트럭터미널과 경부고속도로 만남의광장이 인접해 있으며 최근에 입주한 현대기아자동차 본사와도 가깝다.

당초 부지선정위원들의 심사 결과 이 지역은 국공유지 비율이 낮은 점을 제외하곤 접근성과 환경성, 경제성 등에서 두루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그린벨트에 묶여 있는데다 대부분이 전답으로 이루어져 있어 수용이나 보상이 수월하다는 것도 강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사유지가 대부분인 이 일대의 토지 소유 관계 및 보상을 둘러싼 문제가 논란거리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이 일대에 여당 소속 전직 시의원이 대규모의 임야를 소유하고 보상에 대비해 나무를 심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보 유출과 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정보’에 밝은 외지인들이 보상 차익을 노리고 사전에 ‘투기’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파문 확산을 막으려는 듯 임야가 아닌 전답만으로 공원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전답만으로 추모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린벨트 해제 등을 노린 투기꾼들로 인해 인근 임야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지역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서울시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서초구도 이 일대 사유지의 소유관계를 자체적으로 파악해 외지인의 토지 소유 비율과 사전투기 여부 등을 조사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토지소유 관계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보상할 계획이며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땅투기의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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