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창혁/김근태 의원의 모순

  • 입력 2001년 7월 1일 18시 36분


토요일인 지난달 30일 밤 KBS 심야토론.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의원은 “(시사저널이 폭로한) 언론문건을 보면 비판적인 언론사주를 사법처리한 뒤 방송을 동원해 해당 언론사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보도한다고 돼있던데, 정말 족집게가 아닌가 하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언론사 세무조사 및 고발 등이 사전 각본에 따라 진행되고 있지 않느냐는 문제제기였다.

이에 민주당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은 “우리 당의 ‘공조직’에서 작성된 게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 말은 언론문건이 폭로된 이후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식화된 답으로, 말 뜻을 뒤집어보면 공조직은 아니지만 여권 내 어느 곳에선가 언론문건을 작성했다는 것이 된다.

시사저널이 취재원이라고 밝힌 ‘여권의 싱크탱크’라는 것도, 언론이 통상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권력층의 비선(秘線)을 암시할 때 사용하는 표현.

평소 당내에서 누구보다도 ‘비선 정치’에 비판적인 김 최고위원은 그러나 이날 토론에선 여권 내 비선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당내 ‘정풍파’ 얘기가 나오자 “근본적으로 그 분들의 주장에 대해 이해하고 동의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정풍파 의원들이 요구하는 당정쇄신의 핵심은 바로 ‘비선 정리’였다.

김 최고위원 발언의 모순도 여기에 있다. 언론문건이 공조직에서 작성된 것은 아니지만, 당내 비선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동감하고 있다는 얘기는 언론문건 또한 비선에서 작성됐을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김 최고위원은 언론문건의 정확한 출처를 밝혀야 한다.

사실 언론문건의 출처가 공조직이냐 비선조직이냐 하는 것은 이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언론문건의 내용과 순서 대로 이른바 언론개혁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언론개혁이 여권의 오랜 연구와 준비작업의 산물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김창혁<정치부>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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