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99년 문건' 대로 언론 장악하나

  • 입력 2001년 6월 24일 18시 42분


최근 잇따른 언론사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내부거래 조사 결과 발표 과정을 보면 그것이 99년 10월 폭로된 여권의 ‘언론장악문건’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국세청과 공정위 조사 등 일련의 과정이 바로 그 문건에 적시된 것과 너무나도 유사한데다 조사 착수 시점에서부터 조사의 방식, 발표된 결과에 이르기까지 아무래도 ‘통상적인 행정행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에 대한 언급을 하자 국세청이 전격적으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서고, 공정위까지 가세해 신문사 존립 자체를 위협할 정도의 추징금과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을 ‘통상적’이라고 생각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본란에서 여러 차례 말했듯이 정부가 공정한 조사를 하고 그 결과 불법 사실이 밝혀졌다면 적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적법 절차에는 피조사자측의 이의 신청과 소송 등의 과정이 포함된다. 그러나 정부는 세무조사 결과 공개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을 어기면서까지 세금추징액과 소득탈루의 규모 외에 탈루 유형까지 발표해 언론을 일단 부패 비리집단으로 몰아 국민 불신을 부채질하고 있다.

23일에는 오홍근(吳弘根) 국정홍보처장까지 나서 국세청 및 공정위 발표 이후 “일부 언론이 지면을 통해 여론오도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정부의 일방적 발표에 대해 문제점과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고, 개별 신문사가 특정사항에 대해 소명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세청과 공정위 발표 이후 나타나고 있는 방송의 신문 비판, 신문사간 편 나누기 식의 양태다. 앞서 말한 ‘언론장악 문건’에는 “동아 조선 중앙 등 ‘빅 3 신문’의 공격으로 인해 현정권의 개혁 추진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언론개혁이 필요하다”는 구절이 적혀 있다. 그대로라면 현정권은 세무조사 등을 빌미로 언론의 비판 기능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특히 몇몇 특정 신문을 주요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연 앞으로도 ‘99년 문건’처럼 진행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언론을 장악할 수 있을까. 권력의 의도를 모를 만큼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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