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용석/진정한 남북화해 이루려면

  • 입력 2001년 6월 8일 19시 00분


7일 발표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북한정책 재검토 결과는 그의 보수색깔을 드러냈다. 빌 클린턴 전 행정부의 유화적 대북노선을 수정했고 신축적인 상호주의·검증·투명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기본 골격이 확정되었음을 공표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새 대북정책은 두 가지 원칙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인케 하였다. 하나는 ‘포괄적인 접근 맥락’에서 대화를 추진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화를 하긴 하되 상호주의와 검증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 기본노선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화 우선주의 주장과 부시 대통령의 상호주의·검증 강조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은 결과로 보인다. 꼭 3개월 전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김 대통령은 북한의 변화를 역설하면서 북-미 대화를 요청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며 상호주의·검증·투명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정책 재검토 완료 성명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진지하게 갈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미사일 계획의 검증 가능한 억제’를 명시함으로써 ‘검증’을 전제조건으로 못박았다. 그는 제네바 합의에 따른 북한의 핵 동결 여부에 관해서도 동결 ‘이행을 개선하는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이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투명성과 검증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또한 북한이 미국과의 협의에 ‘긍정적으로 응해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북한을 지원할 수 있다고 적시함으로써 북한의 ‘긍정적인 호응’이 있어야만 미국의 대북지원이 가능하다는 상호주의 원칙을 내세운 것이다.

이제 5개월에 걸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는 끝났고 북-미 대화 주제들도 확정되었다. 다음은 북한이 ‘긍정적으로 응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차례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6·7성명이 상호주의·검증·투명성 등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데서 북한의 긍정적인 호응을 끌어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 남한으로부터 상호주의나 검증의 요구를 받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퍼주는 것이나 받아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북한은 남한으로부터 비위맞추기와 끌려 다니기의 우대까지 받아왔다. 때문에 북한은 남한의 퍼주기로 잘못 길들여진 나머지 미국의 깐깐한 상호주의·검증 요구를 달가워 할 턱이 없다.

김 대통령은 작금의 남북대화 중단의 원인을 부시 대통령의 대북강경노선 표방 탓으로 돌리곤 하였다. 북한도 미국을 끌고 들어갔다. 하지만 북한은 대북 강경발언 1개월 전부터 이미 남북대화를 일방적으로 중단시키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시 대통령이 김 대통령과의 워싱턴 회담에서 대북 강경입장을 토해낸 것은 3월 7일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벌써 한달 전인 2월 8일 제2차 남북군사실무회담 때 남한 국방백서의 ‘주적’개념을 트집잡아 국방장관회담을 중단한다고 통고하고 돌아섰다.

북한이 남북회담을 중단시키기 위해 동원한 ‘주적’ 대목은 구실에 불과했다. 숨겨진 이유는 남한의 금강산관광대금 송금중단에 있었다. 관광대금 송금을 중단하면 대화이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이건 기대하지 말라는 겁주기였다. 이어 2월 10일 열린 남북전력실무회의에서도 남한은 북한측의 50만㎾ 송전 요구를 전력사정상 어렵다고 했다. 전력송전 거부는 김 위원장을 더 화나게 했고 대화는 끊겼다. 퍼주기를 지렛대로 한 대화유인책이 퍼주기의 한계로 약효를 상실하기 시작했음을 반영한다.

이처럼 대화중단의 원인은 미국에만 있지 않고 복합적이다. 한미 양국은 이 같은 배경 속에 돌아선 북한을 다시 대화마당으로 끌어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남한은 더 이상 퍼줄 힘도 없다.

앞으로 한미 양국은 대화과제로서 반드시 다음 대목을 유의해야 한다. 퍼주고 끌려 다니며 비위나 맞춰주는 데도 북한이 ‘주적’개념을 핑계로 대화를 일방적으로 중단시키고 북한 상선들로 하여금 남한 영해를 거듭 침범케 한다면 대화를 구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을 위한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상호주의·검증·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정용석(단국대 정치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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