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 사람 세상]왜 스타에 열광하는가

  • 입력 2001년 6월 8일 18시 31분


현충일인 6월 6일, 장충체육관에서 그룹 ‘H.O.T’의 전 멤버 토니 안의 생일파티가 열렸다는 보도를 접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1980년대 이전에 태어난 성인들의 대부분은 ‘저런 미친 것들’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10대 팬들을 성토했으리라 생각한다.

현충일은 국가의 가장 강력한 상징 중 하나이며, 국가와 한 가수는 감히 비교할 수 있는 존재조차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스타를 둘러싼 문제가 그렇게 단순할까.

스타와 이미지 산업에 대한 책들 속에서 가장 통찰력있는 고전으로 프랑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의 ‘스타’(문예출판사·1992년)가 있다. 여기서 모랭은 매스미디어와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스타 자체를 상품화하는 과정을 고찰하면서 “현대에 스타는 반신(半神)이 되었다”고 갈파한다.

사실 스타를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스타가 사는 세계란 현실 세계와는 다른 별천지이고 지상을 초월한 낙원이며, 마약과 같은 몰아(沒我)의 쾌감이 존재하는 곳이다. 스타를 숭배하는 개인은 같은 스타를 숭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감을 잊고 단체 속에 용해된다. 스타 숭배자들은 스타가 추락하지 않도록 받쳐주고, 스타는 스타 숭배자들이 외로운 개인으로 남지 않도록 해준다. 스타가 쓰던 물건은 성물(聖物)이 되고, 스타는 행복으로 충만한 천국을 상징하게 된다.

과연 정신적으로 나약한 십대들이 이러한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스타는 의사소통의 코드가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대신 확보해 주는 엠블럼이 되고, 스타 숭배 집단은 외로운 개인에게 의사 공동체를 제공하는데. 그리고 서로가 각자의 경쟁 상대인 또래들에게 스타는 유대감을 심어주는데 말이다.

과거에는 국가와 민족과 가족이 주었던 정서적 안정감과 행복을, 이제는 스타와 스타 주위의 공동체가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월드컵 축구 스코어에 환호하는 어른들을 더 우습게 볼 수도 있다.

미국의 탁월한 SF소설가인 윌리엄 깁슨의 근작소설 ‘아이도루’(황금가지·2001년)는 현대사회의 스타 숭배 현상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미미하게나마 해결책을 제시한다. 록 밴드 ‘로/레즈’의 결혼설이 사실인가를 밝히려고 시애틀에서 도쿄까지 날아가는 14세의 치아 맥켄지가 온갖 모험 끝에 발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스타들에게는 군중이 보지 못하는, 또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정한 공간이 존재하며, 그 공간에서는 미치광이 같은 일이나 따분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로/레즈’의 실체를 현실에서 만남으로써 ‘아이도루’를 반신(半神)에서 끌어내려 인간으로 대등하게 볼 수 있게 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스타 숭배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과연 이같은 교과서적인 해법이 우리 사회에서도 먹힐지는 모르겠다. 너무나 도피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이 사회에서.

송경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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