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야스쿠니 신사

  • 입력 2001년 5월 25일 18시 48분


◇그들은 왜 신사참배를 고집하는가?

일본 도쿄시내에서 지하철을 타고 중심부의 치요다(千代田)구 구단시타(九段下)역에서 내려 5분 가량 걸어가면 야스쿠니(靖國) 신사라는 곳이 나온다. 1869년에 건립된 이 야스쿠니 신사는 당시에는 ‘도쿄초혼사’(東京招魂社)라 불리웠다. 이 도쿄초혼사는 막부말 유신기에 일본 각지에 산재해 있던 초혼사들의 센터였다. 1853년 미국 페리제독의 내항으로부터 시작된 서구 열강들의 위협에 맞서 도쿠가와 막부를 옹호하는 존왕양이파와 막부 타도를 외치는 개항파 사이의 유혈 정쟁으로 어지러웠던 에도시대 말기의 일본에서는 ‘초혼‘이라는 새로운 관념이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된다. 여기서 ‘초혼‘이란 ‘위령‘(慰靈) 즉 죽은 자의 영을 불러내어 위로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초혼의례의 배경에는 ‘어령(御靈)신앙‘이라고 하는 민간적 종교관념이 깔려 있다. 어령신앙이란 중세 이래 생전에 비정상적인 죽음을 당한 자 혹은 원한을 품고 죽은 인간이 사후에 탈이나 재앙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신으로 모시게 된 일본 특유의 현상을 가리킨다. 전쟁터에서의 죽음은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며 따라서 전사자들을 신으로 모셔 위령제를 올려야만 탈이 없을 거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야스쿠니 신사에는 오늘날 막부말기 이래 무진내전(1868년), 서남내전(1877년),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에서 죽은 군인과 군속 등 245만여명이 제신으로 모셔져 있다.

‘야스쿠니’란 곧 ‘평화로운 나라’를 뜻한다. 그 누가 ‘평화로운 나라’를 꿈꾸지 않겠는가? 미국인들이 전몰장병 추도식을 마치 하나의 종교의례처럼 거행하는 것이나 야스쿠니 신사에서의 제사나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가 역사적으로 일본 군국주의 및 천황제 국가신도체제와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에도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총리를 비롯한 14명이 모셔져 있다는 점, 그리고 일본내에서 강력한 세력을 지니고 있는 유족회와 신사본청 및 우익진영에 의한 야스쿠니 신사 국영화의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에 있다.

상당수의 일본인들은 가령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느끼지 않는 듯 싶다. 그들은 심정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의 존재에 대해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군의 학자들, 기독교계를 비롯한 종교계, 재일조선인 단체, 사회당과 공산당 등에서는 야스쿠니 신사의 국영화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오에 시노부의 ‘야스쿠니 신사’도 이런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대표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예민한 문제의식과 꼼꼼한 작업으로 이 책을 펴 낸 역자에 의하면, “일본 군사사와 종교사 분석을 통하여 야스쿠니 신사가 패전까지의 일본 국민을 ‘천황의 군대’에 밀접하게 결부시켰던 고리 역할을 담당한 군국 신사였고, 따라서 국민통합을 위한 강력한 이데올로기 수단이었음을 규명한 역작”이다. 매년 광복절 때가 되면 어김없이 신문지상을 장식해 온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고자 할 때, 이 책은 무엇보다 충실한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

오에 시노부 지음 양현혜 이규태 옮김 224쪽 5500원 소화

박규태(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일본종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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