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정난정과 역사드라마

  • 입력 2001년 5월 11일 11시 56분


텔레비전에서 역사가 넘쳐납니다. 월화에 '여인천하'를 보고, 수목에 '명성황후'를 보고, 금요일은 '도올의 논어이야기'를 잠시 기웃거렸다가 토일에 '태조 왕건'을 보면 일주일이 꽉 차니까요. 거기다가 '홍국영'을 재방송으로 찾아보고 '역사스페셜'까지 살피면, 텔레비전만 들여다보아도 선조들의 삶을 한 눈에 헤아릴 듯합니다.

경쟁하듯 쏟아지는 역사드라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또한 사실이지요. 흥미를 위해 사실을 왜곡한다든가 주인공을 지나치게 영웅화시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인천하'만 예로 들어보자면, 정난정의 출생부터가 문제이겠지요. 부총관 정윤겸과 관비의 소생인 정난정을 파릉군의 딸로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복선을 까는 부분이 역사학자들의 눈엔 탐탁지 않을 것입니다. 천출에서 왕족으로의 신분 상승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행하는 드라마를 향해 혀를 차겠지요.

허나 영웅소설(영웅드라마)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요. 영웅의 일대기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는 '신비한 출생'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정난정을 '여성영웅'으로 그리는 이 드라마에서, 그녀를 고귀한 혈통이지만 뜻하지 않은 불행으로 천민의 틈에서 자라난 존재로 부각시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난정의 삶이 감동적인 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신이 가진 신분적 한계를 뚫고 올라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 최선에 선한 것과 악한 것이 공존하는 것이 문제이겠으나, 어쨌든 그녀는 조선시대 여인들 중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몇 안 되는 걸물입니다.

엉뚱하게 들리시겠지만, '여인천하'를 볼 때마다 저는 종종 '테스'를 떠올리지요. 테스의 삶은 추락 그 자체입니다. 강간을 당하고 미혼모가 되고 남편에게 버림받고 살인자가 되어 처형되는 여인의 삶. 정난정의 삶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겠으나, 그녀는 테스와는 달리 조선시대 여인네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인 정경부인까지 올라갔지요.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여인상은 소극적으로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테스가 아니라 사회와 맞서 싸우고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깨고 올라가는 정난정이 아닐까요? 명성황후 역시 정난정과 비슷한 캐릭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드라마의 원작들이 대부분 역사소설인 까닭에, 드라마에 대한 비판은 곧 역사소설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집니다. 역사소설가들의 사관이 의심스럽다는 극언까지 나오는 실정이지요. 허나 저는 그런 비판에 앞서, 역사 속의 인물들을 충실히 복원하고 그들의 고뇌를 사실적으로 다룬 저서나 논문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역사소설가들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소설가적 자유라는 측면도 있지만, 역사적 인물들의 삶과 사유를 사실적으로 복원해낸 성과가 없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택하는 길이기도 하지요.

최근에 '미시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치사나 경제사에 머무르지 말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 천착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지요. '화인열전'을 펴낸 유홍준 선생님이 "미술사의 길에는 편년사로서 미술사, 양식사로서 미술사, 도상학으로서 미술사 이외에 인간학으로서 미술사가 있다"는 지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역사든, 역사소설이든, 역사드라마든 그 출발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나를 살펴 현재의 나를 반성하고 미래의 나를 준비하는 행위이지요. 여기서 소설과 드라마는 역사 자체보다 조금 더 현재를 위해 과거를 조금씩 각색하는 예술행위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역사소설이나 역사드라마가 '엉터리'라고 개탄하시는 역사학자들이 직접 정난정과 명성황후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쓰는 것은 어떻겠는지요? '마르탱 게르의 귀향'처럼, 역사학자의 상상력으로 빚은 눈부신 저작을 만나고 싶습니다.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