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줌인] 방송위 징계 '거북 걸음'

  • 입력 2001년 5월 9일 18시 44분


방송위원회가 7일 KBS MBC EBS 등에 대해 방송사상 처음으로 자체 사전 심의 불이행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같은 결정이 나오기 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김정기 방송위원장은 1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방송사 자체 심의기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위한 세부 계획을 수립해 ‘곧바로’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김위원장은 “심의규정 위반 정도가 심한 곳은 방송사 면허의 재허가 또는 재승인을 일정기간 보류할 수도 있다”고 덧붙혔다.

그리고 80여일이 지난 3월29일 열린 방송위 연예오락 제1심의원회.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진행자가 바지를 벗고 고공 크레인에 매달리는 장면을 방송한 MBC에 ‘시청자에 대한 사과 명령’ 등 제재조치를 내리기 전 MBC 관계자에게 의견 진술을 듣는 자리였다.

심의 도중 MBC 관계자로부터 “‘일요일…’의 대본이나 영상물을 사전 심의하지 않았다”는 뜻밖의 진술을 들었다. 1월 기자간담회에서의 ‘다짐’과 달리, 그 때까지 방송사 자체 사전 심의 강화를 위한 뚜렷한 조치를 마련하지 못한 방송위로서는 ‘의외의 수확’이었다.

방송위는 부랴부랴 4월2일 방송위 전체회의에서 과태료 액수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과태료 액수는 또 한달을 훌쩍 넘긴 이달 7일에야 결정됐다.

방송위측은 “이날 MBC와 함께 KBS EBS를 묶어서 과태료 액수를 정하기 위해 결정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송위가 방송사들에게 매주 자체 사전 심의 일지를 제출받기 시작한 것은 MBC측이 ‘실토’한 지 3일 지난 4월1일부터다.

이에 대해 방송위측은 “이미 3월 중순 경 방송사들에게 심의 일지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방송위원장의 자체 사전심의 강화 발언 이후 가시적인 조치가 나오기까지는 무려 117일이 걸렸다. 더 큰 문제는 방송사들이 방송위의 이런 속성을 꿰뚫고있다는 데 있다. 방송위가 지금까지 무엇을 결정하는데 그리 신속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1999년 3월에도 MBC 드라마 <청춘>의 일본 드라마 표절 파문이 일었지만 방송위는 “처음 내리는 징계 결정이 미칠 파장을 고민 중”이라며 한참 머뭇거렸다. 그 이후에도 일부 방송사의 표절이 계속되는 것은 물론이다.

방송위의 적절하고 신속한 대응이 없는한 프로그램 표절과 저질 폭력 시비는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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