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꽃가루에 1만년전 기후 담겨있네"

  • 입력 2001년 5월 2일 18시 40분


인류가 온도계로 기온을 측정한 것은 1850년대 중반 이후다. 그 이전의 기후는 간접적인 증거를 통해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때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에 민감한 생물의 특성을 이용한다. 나무의 나이테, 호수나 늪지에 가라앉아 있는 꽃가루, 산호의 뼈대는 고대 기후를 연구하는 데 대표적인 ‘생물 타임캡슐’이다.

▽기후변동 알려주는 나무의 연륜〓나무의 세포는 봄부터 여름까지는 물 공급이 충분하기 때문에 부피가 커진다. 그러나 세포를 만드는 데 열중한 나머지 미처 두껍고 튼튼한 세포벽을 만들지 못한다.

반면 늦여름에서 가을에 이르는 시기에는 물 공급이 적어 세포가 충분히 팽창하지 못하는 대신 세포벽이 두꺼워진다. 이 차이가 띠로 나타나는 것이 나이테다. 과학자들은 나이테의 굵기, 조밀도를 비교해 기후 변화를 알아낸다.

나이테는 나무가 자랄 당시의 자연 사건까지 추적할 수 있다. 연륜연대학을 연구하는 박원규 교수(충북대 산림과학부)는 “나이테에 나타난 생장교란점을 찾아냄으로써 생육환경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이테가 한쪽으로 찌그러진 경우는 토양의 침식이나 산사태로 나무가 기운 채로 자랐기 때문이다. 이 경우 침엽수는 경사면 아래쪽으로 타원형이 되며 활엽수는 그 반대다.

나이테로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은 500∼700년 전부터 현재까지이지만 화석의 경우 더 늘어난다. ‘네이처’ 3월 29일자에는 칠레에서 발견된 나무 화석의 나이테로 5만년 동안의 기후변화를 알아냈다는 결과가 게재되기도 했다.

▽식물의 지문 꽃가루〓호수와 늪지의 퇴적물에는 꽃가루가 많이 포함돼 있다. 꽃가루의 외부 세포벽은 강한 황산에도 녹지 않고 고온고압 상태에서도 수 만 년 정도 보존되는 스포로폴레닌이란 단단한 단백질 물질로 구성돼 있다.

서울대 이은주 교수(생명과학부)는 “꽃가루는 식물의 종류마다 외부 모양과 크기, 장식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 때문에 꽃가루를 가지고 식물을 알아 낼 수 있다”면서 “꽃가루는 식물의 지문인 셈”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꽃가루를 통해 과거의 식물상을 알아내 결과적으로 기후변동을 추적한다.

예를 들어 미국 미네소타 북부의 한 습지퇴적층에서 1만1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 지역에 서식하던 14종의 꽃가루를 확인했다. 조사 결과 가장 오래된 층에서는 가문비나무 꽃가루가 많았는데 이것은 그 당시의 기후가 매우 추웠음을 의미한다. 그 후에는 소나무가 우세했는데 기후가 따뜻해지고 건조했음을 보여준다. 8500년 전에 이르면 참나무가 많이 나타나는데 이때는 기후가 습했음을 알 수 있다.

▽엘니뇨 추적하는 산호의 나이테〓해양 기후변동은 산호로 알 수 있다. 산호의 뼈대는 탄산칼슘으로 구성돼 있다. 겨울에 형성된 산호의 뼈대는 여름에 형성된 것과 밀도가 다르다.

그래서 산호도 나무처럼 나이테를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산호의 뼈대를 추출해 나이테를 비교함으로써 뼈대 성장에 영향을 미친 엘니뇨와 같은 해양 기후 변동 등을 찾아낸다. 산호초 화석을 통해서는 13만 년 전의 기후변동도 알 수 있다.

또한 산호를 이루는 원소의 조성비 및 산소 동위원소의 조성비를 통해 해수 표면의 온도와 염분 변화를 알아낼 수 있다. 조사 가능 기간은 일반적으로 400년 정도이다.

한편 월드워치가 펴낸 ‘지구환경보고서2001’에 따르면 지구온난화 등에 의해 전세계 산호초 군락의 27%가 사라졌다. 산호초 군락의 소멸은 이처럼 기후 변화의 또 다른 지표가 된다.

<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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