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안은미 춤 공연, 지나친 재미 의식 예술성 반감

  • 입력 2001년 4월 17일 18시 45분


인간은 보통의 언어로 나타내지 못했던 아이디어와 감정들을 예술 공연, 또는 오락과 사회적 행사 등을 통해 표출한다.

‘은하철도 000’(12∼15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안무자 안은미가 춤으로만 얘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어떤 표현 욕구와 수단으로 1시간40분간 1000명에 이르는 관객의 시간을 뺏을 ‘용기’를 가졌을까.

안은미는 작품 속에서 무용수 신체에서 ‘육체성(flashiness)’을 빼앗는 시도를 한다. 신체를 육체가 아닌 표현의 도구로 보는 것은 무용의 기본 원칙이다. 그는 이날 공연에서 의상을 통해 인위적으로 무용수의 성(性)을 바꾸는가 하면 소도구로 성을 코믹하게 처리하는 등의 방식으로 신체의 도구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기존 작품을 연상시키는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의 산만한 나열로 자신 만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도입부 등 몇 대목은 무용계에 전환점을 제공했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피나 파우쉬는 ‘1980…’에서 공연 중간에 휴식 시간을 주는 대신 무용수들이 관객들에게 직접 차를 대접하는 장면을 삽입한 바 있다. 이 시도는 공연예술로서 무용의 필수구성요소인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을 다른 각도에서 인식하게 만든 사건으로 기록된다.

‘은하철도 000’의 관객은 열차가 떠나기 전에 음료 서비스를, 진짜가 아닌 무용수들의 허구적 행위를 통해 강요당했다는 점이 다를 뿐 전체적인 아이디어는 같다.

또 하나 이번 공연에는 무대 공중에 매달려 떠다니는 무용수의 이미지도 등장한다. 이는 무용하면 공중에 높이, 오래 멈춰 있어야 한다는 발레 테크닉 마니아를 향해 안무가 마기 마렝(Maguy Marin)이 보인 ‘냉소’의 기법적 계승으로 볼 수 있다.

공연 뒤 결론은 안은미의 사고체계와 그의 심미관에 익숙하지 않고서는 예술로써 작품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날 공연에 호흡을 맞춰 즐거워하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는 면에서 볼 때 나는 ‘감상에 실패한 관객’이다. 나의 실패가 정당하다면 이 공연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재미를 의식한 장난에 가까웠다.

한혜리(무용평론가·경성대 무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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