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외환시장 개입의미]"투기세력 환율 농간" 강한 대응

  • 입력 2001년 4월 5일 18시 52분


4일 점심을 먹고 딜링룸에 들어온 도이체방크 신용석부지점장은 긴장해야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조정을 보이던 원―달러환율이 오후 들어 치솟기 시작했기 때문. 그러나 엔―달러환율은 126엔 초반대에 그대로 머물러있었다. 국내 업체들이 앞다퉈 달러를 미리 사들이고 외국계은행의 투기세력이 들어오면서 엔화와 상관없이 원―달러환율이 폭등한 것.

“4일 오후 외환시장은 분명히 심상치 않은 장이었다. 외환당국에서 뭔가를 내놓아야 할 때임을 감지했다.” (신용석부지점장)

예상대로 한국은행은 휴일인 5일 ‘직접 개입’을 포함한 강도 높은 외환시장 대응책을 발표했다. 한은의 공격타깃은 달러 사재기 세력과 투기세력.

외환수급상황이 양호하고 최근 며칠 동안 엔화는 안정세를 보이는데도 원―달러환율만 유독 오르는 것은 투기세력의 이상행동 때문으로 판단한 것. 2일과 3일 단행한 구두개입과 국책은행을 통한 달러의 공급은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결국 외환당국이 직접 외환시장에 참가해 외환보유고에서 달러를 공급하겠다는 ‘최고의 강수’를 언급한 것.

LG경제연구원 이창선부연구위원은 “외환위기의 한 유형이 투기가 투기를 불러 환율상승 심리가 꺾이지 않는 것임을 감안할 때 적절하게 환율안정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이체방크 신부지점장은 “외환당국이 직접 개입을 하면 단기적으로 환율을 끌어내리는 효과가 있지만 엔―달러환율이 다시 오를 경우 상승추세 자체를 막기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외환딜러들은 진짜 환율을 잡으려면 사전 경고 없이 일거에 시장에 들어가야 하나 이처럼 경고발언을 하는 것을 봐 실제 개입 여부는 지켜봐야 하며 실제 개입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까지는 크게 긴장하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일종의 ‘전쟁’으로 봐야하는데 여기서 질 경우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외환당국의 딜레마.

한국금융연구원의 박해식연구위원은 “대외적으로 일본 엔―달러환율상승이라는 환율상승요인이 있는 상황에서 환율을 떨어뜨리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부작용이 크다”며 “상승속도를 조절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하며 과도하게 환율상승을 억눌러선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LG경제연구원의 이위원은 “외환당국이 달러를 찔끔찔끔 공급할 경우 오히려 투기세력이 싼값에 달러를 살 수 있는 기회만 제공하면서 보유외환을 낭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음은 한은 이재욱부총재보의 일문 일답.

―보다 강력한 조치란 시장에 개입한다는 것인가.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방법이 뭔지는 기자들 99%가 이해할 것이다.”

―투기세력이 가세한 건가.

“보통 홍콩에 거주한 외국계 투자자들이 엔화와 원화를 함께 거래하는데 원화는 규모가 작고 변동폭이 커서 (투기세력이) 달라붙기 쉽다.”

―97∼98년처럼 개입했다가 부작용이 클 수도 있는데….

“걱정해줘서 고맙지만 이미 부작용에 대한 판단은 마친 상태다. 시장이 과민반응하고 있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때는 당연히 개입해야한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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