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풍자예술의 역사

  • 입력 2001년 3월 30일 18시 52분


◇시대를 조롱한 '풍자의 미학'

샹플뢰리 지음 정진국 옮김

424쪽 1만2000원 까치

근엄하고 거룩해야 할 대성당 기둥 위에 갖가지 기괴한 형상의 괴물이 앉아 있다. 눈에 익은 노트르담 성당 뿐만이 아니다. 짐승들이 십자가를 들고 행진하는 성당 장식, 배설하는 남자가 새겨진 시청사의 기둥머리…. ‘경건한’ 시대로 여겼던 중세시대의 작품들이다. 왜 이런 괴물들의 모습이 남아있는 걸까?

19세기 중반의 문인이자 미술사가였던 저자는 고대 건축물, 중세 건축물과 수도원의 희귀본 및 기록화 등을 꼼꼼히 추적해 옛 시대를 수놓은 풍자미술의 자취를 추적한다.

저자는 중세 풍자미술의 기원을 기독교 수립 이전의 고대 이교풍습 및 플리니우스 등 고대 박물학자들에게서 찾는다. 기독교의 전래와 함께 유럽의 민속신앙은 사라진 듯 보였지만 미개 종족들이 섬기고 두려워한 괴물들은 성당의 기둥과 외벽에 달라붙었다는 것. 개 머리를 한 사람과 뱃가죽 한가운데 눈이 있는 종족 등 고대 박물학자가 남긴 온갖 괴물의 기록도 중세 조각가와 삽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괴물들’이 중세를 살아남았을까? 중세의 이 기괴한 풍자들은 민중이 시대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잠시나마 숨쉴 수 있는 ‘배출구’였다. 때로는 당나귀와 어릿광대를 위한 축제가 열려 주교와 봉건영주를 야유하기까지 했으나 지배자들은 이를 관대히 허용했다.

“대성당들은 예배만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변론하고 거래하고 세속적 오락도 즐겼다.” 수사들의 교훈서에 실린 원숭이 당나귀 등의 우스꽝스러운 삽화는 풍자를 통해 올바른 몸가짐을 깨우치도록 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가 무엇보다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유치하고 추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풍자예술의 ‘힘’과 ‘가치’다.

“아름다움만을 염두에 두는 예술가보다, 패러디를 행하는 예술가가 더 조직된 두뇌의 소유자다. 그는 시대의 문제에 몰두하며 분노한다. 그의 분노는 그의 필력(筆力)을 이룬다. 아첨꾼의 천박함을 그 무엇이 보여줄 것인가? 압제자들에게 예정된 심판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풍자화는 이 모든 질문을 위해 존재한다.”

다양한 자료그림은 글의 이해를 돕지만, 때로 직역투를 벗어나지 못한 번역문이 책장 넘기는 속도를 늦춰 아쉬움으로 남는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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