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식물은 질병 해결할 열쇠"

  • 입력 2001년 3월 28일 18시 45분


주목세포
196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을 주도하던 세력은 중국전통의학에 쓰이던 약초에 대해 대대적인 연구를 벌였다. 1972년 이들은 개똥쑥에서 항말라리아 성분 ‘아테미시닌’을 발견했다. 이 물질은 현재 말라리아균과 싸우는 가장 효과적인 약으로 쓰인다.

199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해 1999년에만 2조 원어치가 팔린 탁월한 항암제 탁솔 역시 1950년대 말부터 미국 국립암연구소(NCI)가 벌인 천연물 수집 프로젝트에서 수집된 식물 1만5000종의 하나인 주목의 껍질에서 얻은 물질이다.

1979년 과학자들은 탁솔이 암세포의 분열을 담당하는 미소관에 결합해 암이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누구도 이런 식으로 암세포가 공격당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탁솔같은 신화를 꿈꾸지요.”

한국생명공학기술원 권병목 박사의 말이다. 권 박사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권 박사는 지난 몇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20여종의 쑥을 모았는데 그중 하나에서 항암효과가 있는 ‘아테미노라이드’라는 물질을 찾았다. 연구 결과 이 물질은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 소규모 동물시험을 마치고 현재 본격적인 동물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식물에서 신약을 찾는 연구가 최근 들어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기존의 화학합성에 의존한 신약개발에 한계를 느낀 선진 제약회사들이 인류가 오랫동안 약으로 써 온 각종 식물에서 약효성분을 찾는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생명과학의 발달로 식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과학자들은 식물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식물의 유전자수도 대체로 동물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교적 단순한 식물인 벼의 경우도 유전자가 5∼6만개로, 3∼4만개인 인간보다 많다.

지난해 개똥쑥에서 아테미시닌을 만드는데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아내 주목을 받았던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김수언 교수는 “최근 연구 결과 식물 유전자의 25∼30%가 2차대사물에 관여하는 유전자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2차대사물이란 녹말이나 단백질처럼 식물의 구조나 영양에 관여하는 성분을 제외한 물질들이다. 보통 한 식물에는 수천 가지 2차대사물이 존재하나 양이 매우 적고 구조가 복잡해 최근까지도 그 역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해열진통제로 널리 쓰이는 아스피린은 식물체에서 작용기작이 밝혀진 몇 가지 안 되는 2차대사물의 하나이다. 아스피린이 체내에서 활성화된 형태인 살리실산은 버드나무 등 식물체에서 발견된다. 식물은 병균의 침입을 받아 상처가 생기면 주위 세포에서 살리실산을 분비해 인접세포를 죽여 버린다. 더 이상 균이 퍼져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아스피린은 식물의 화학무기인 셈이다.

지난해부터 한반도에 자생하는 식물을 연구하는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정혁 박사는 “식물은 오랜 진화를 거치며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다양한 구조와 활성을 지닌 물질들을 만들어 왔다”며 “인류가 직면한 각종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여기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강석기동아사이언스기자>alchimist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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