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찬의 문화비평]'기념행사'만으론 한국사상 미래 없다

  • 입력 2001년 3월 20일 18시 53분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어지는 경우가 있어도 나는 이 조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독실한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믿음이 부족한 어느 독립운동가의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일제 치하에서 ‘성서조선’을 발행하며 무교회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김교신(金敎臣·1901∼1945)이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돼 형사의 취조를 받으며 했다는 말이다.

일제하라는 현실 인식 속에서 기독교 정신을 수용해 ‘조선산 기독교’를 제창했던 그의 사상은 한국사상사에서 잊혀져 왔다. ‘조선산 기독교’의 의미는 성서라는 보편적 진리를 조선이라는 구체적 현장에서 받아들이고 성서의 진리를 조선의 문화와 역사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사상적 원점으로 세움으로써, 조선을 신의 세계 질서를 증거하는 존재로 만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이런 그의 사상은 성경중심적인 보수교단과 고전중심적인 한국철학계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었다.

김교신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1890∼1981)는 철저한 금욕적 수행 속에서 동양인으로서 성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동양사상과 기독교를 꿰뚫는 통찰을 보여줬고, 김교신의 동학인 함석헌(咸錫憲·1901∼1989)은 기독교적 역사관으로 한국사에 의미를 부여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사상 역시 한국 학계에서 외면당해 왔다. 유영모의 사상은 보수교단의 성경중심적 입장과 동양철학계의 고전중심적 입장 사이의 중간지대에 있었고, 함석헌의 사상은 역시 성경중심적 입장과 한국사학계의 실증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처럼 한국인으로서의 문제의식 속에서 외래사상을 한국화하려 했던 사람들은 이른바 서양근대의 학문방법론과 동양전통의 주석학에서 벗어났다고 외면됐고, 일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현실 인식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해 독립을 이루려 했던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은폐됐다. 게다가 유학을 바탕으로 서양사상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루려 했던 개화기의 사상가마저 패배자라며 묵살되다보니 우리의 근 현대사상사는 아무 것도 없는 공백으로 남고 말았다.

지금도 자신이 획득한 학문방법론을 기득권으로 삼아 누가 더 서양의 지적 흐름을 빨리 수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가를 겨루는 서양철학과, 누가 더 동양고전을 정확하게 해석하는가를 겨루는 동양철학이 서로 담을 높이 쌓고 있는 지적 풍토에서 한국 현실의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삶의 문제의식을 사유화해 내는 작업은 설 자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와 생활 속에는 이미 한국과 동양과 서양이 깊이 어우러져 있다. 사람들은 이 상황을 함께 고민할 철학을 요구한다. 대학에서는 강단 철학의 위기가 우려되고 있어도, 철학서적은 그칠 줄 모르고 발간되고 각종 문화강좌마다 철학강좌가 인기를 모은다.

최근에 일고 있는 유영모 함석헌 김교신 등 한국인으로서 서양의 종교사상을 ‘소화’해 내려했던 사람들에 관한 관심이 그저 이들의 탄생 몇 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그치지 않도록 하는 일은 한국 현대사상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과 직결된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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