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장진구하다'

  • 입력 2001년 3월 20일 18시 32분


아줌마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았던 MBC 드라마 ‘아줌마’가 어제 막을 내렸다. 속물적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남편 장진구와 이혼한 아줌마 오삼숙이 꿋꿋하게 홀로 서는 반면 장진구를 비롯해 그와 같은 부류인 주위 인물들은 철저하게 깨지는 결말이다. 수많은 아줌마 시청자들이 바라던 대로 된 셈이다. 애초 드라마의 대본에서는 오삼숙이 이혼까지 하지는 않으려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혼 안 시키면 안 보겠다’는 아줌마 팬들의 성화에 결국 굴복(?)했다고 하니 어느 면에서 ‘아줌마 주권’이 관철된 셈이다.

▷이 드라마에서 ‘장진구하다’는 말이 나온다. 장진구의 친구가 장진구에게 말하기를 “업그레이드 된 국어사전 봤느냐? 거기에 망가져도 너무 망가진 인물을 ‘장진구하다’라고 하더라고”,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대목이다. 물론 문법상으로는 당치 않지만 자신의 행위를 어설픈 지적 논리로 합리화하기 일쑤인 ‘껍데기 지식인’을 풍자하는 데는 마침맞다.

▷명색이 교수라는 장진구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작가 정성주씨의 말을 들어보자. “먹물이 잘못 들면 정말 치명적이다. 그것에 취해서 벗어나기 어렵다. 장진구에게는 진정한 생활이 없다. 어느 줄에 설까, 어디에 붙을까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인물은 끝까지 주접을 떨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구제 불능인 속물적 지식인의 전형(典型)이란 얘기다. 문제는 우리 주위에 이런 인물이 적지 않고, 그런 인물일수록 드라마에서처럼 깨지기는커녕 대체로 잘 나간다는 것이다. 그게 어디 지식인 사회뿐이던가.

▷요즘 정치권에서는 ‘차기 킹메이커’ 소리가 요란하다. 내게 잘 보이지 않으면 다음 대권을 잡을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JP가 운을 떼니 YS측이 ‘진짜 킹메이커는 이쪽’이라며 나선다. 호가 빈배(허주·虛舟)라는 구(舊)정치인도 한몫 낀지 오래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노릇이다. 도대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킹(king)’이며,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기에 ‘메이커(maker)’인가. ‘꼴불견이다’라는 말대신 ‘○○○하다’라는, 또 다른 신조어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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