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 입력 2001년 3월 16일 19시 14분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윌리엄 레너드 랭어 엮음/박상익 옮김/500쪽, 2만1000원/푸른역사

기원전 399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한 재판이 열렸다. ‘피고’는 70세의 소크라테스였고, 그를 고발한 사람은 멜레토스라는 이름의 시민.

재판정의 서기가 관례에 따라 단상에 올라가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이 믿는 신들을 믿지 않은 죄, …, 또한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를 범하고 있다. 형벌로 사형을 제안한다”고 죄목을 낭독했다.

흥미로운 것은 30세 이상의 명망있는 시민 501명으로 구성된 ‘배심원’의 태도. 당시 재판은 ‘2심제’였다. 투표를 통해 피고의 유죄 여부를 가린 뒤, 유죄라면 각각 원고와 피고가 제안한 형벌을 선택하는 또 한번의 투표를 실시했다.

1차 투표에서는 유죄 281표, 무죄 220표로 소크라테스의 유죄였다. 문제는 형벌의 종류를 정하는 2차 투표였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유죄 인정을 대가로 형량을 낮춰주는 검사와 변호사의 ‘협상’은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다시 강경하게 무죄를 주장했지만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2차 투표에서 80명이 그에게 등을 돌려 361대 140으로 사형이 확정된 것이다.

이 재판과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종종 다수결에 의한 폭정의 증거로, 또는 그래도 이를 받아들인 현인의 숭고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과연 그것만이 진실이었을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고학 교수인 모지즈 핀리는 위대한 철학자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무지한 시민들의 변명을 전해준다. 소크라테스의 민주정에 대한 공공연한 비판이 당시 최고 가치였던 시민의 권리와 국가의 틀을 위협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명한 역사학자들이 쓴 17편의 역사 에세이를 통해 고대 그리스에서 18세기까지 의 서양사를 깊이있게 다뤘다. 흔히 역사 개설서는 불가피하게 사실의 단편적인 나열로 되기 쉽지만 이 책의 접근법은 다르다.

호메로스, 알렉산더 대왕, 사를마뉴 대제 등과 세르반테스 소설의 ‘돈키호테’ 등 그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서양사의 결정적 순간들로 안내한다. 소크라테스에게 유죄를 선고한 배심원들에게 ‘변명’의 기회를 준 것처럼 동 시대인의 가슴과 눈높이로 역사의 이면에 다가선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이 책을 엮은 랭어는 미국의 외교사가로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와 미국 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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